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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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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렸다.”

 

저는 위에서 복음을 인용하며 투덜거렸다는 말에

무얼 투덜거렸는지 그 내용을 빼고 인용했습니다.

 

뺀 내용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인데

제가 이 부분을 뺀 이유는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 말씀을 듣는 것과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린 것을 대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경청자와 투덜이의 대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어지는 비유에서도 재현됩니다.

둘째 아들은 경청자이고 맏아들은 투덜이입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유산을 챙겨 아버지를 떠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듯이

작은아들은 죄를 뉘우치고는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맏아들이 한 번도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

아버지께 한결같은 충성과 사랑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자비를 체험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체험하는 데 비해

맏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에게도 자비하신 것 때문에 삐지고 투덜거립니다.

 

아버지가 늘 아버지와 함께한 자기한테만 자비하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괘씸한 동생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잔치까지 베푸니 화가 단단히 났고

그 바람에 아버지의 자비를 느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는 햇빛을 같이 쐬지 않고 나만 쐬려는 고약한 심사인데

그 바람에 자기도 동생에게 자비롭지 못하고

아버지의 자비도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웃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하느님의 자비도 체험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사람이 이웃에게도 자비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동생을 환영하는 잔치에 함께하자고

아버지가 초대해도 그 잔치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 장면입니다.

 

비유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자비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아버지의 집은 자비의 집입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그 집을 떠났다가 되돌아오지만

맏아들은 화가 나서 그 집 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자비를 몰랐던 것은 둘 다 마찬가지였지만 차이가 있다면

작은아들은 늦게라도 자비를 알게 되고 자비 안으로 돌아간 반면

맏아들은 동생과 같이 아버지의 자비 안에 있는 것을 거부했기에

끝까지 아버지의 자비를 모르고 자비 밖에 있게 된 점입니다.

 

끝까지 투덜거리며 아버지의 자비 밖에 있는 맏아들이 가엾습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투덜이 맏아들이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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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성체순례자) 10 시간 전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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