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사야의 예언, 곧 동정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 하느님, 메시아 하느님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이루어진다는 얘기이고 구조입니다.
그러나 예언이 이루어진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오늘 히브리서는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뜻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고,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당신 뜻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어도
우리 인간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이루실 수 없는데
예수님도 마리아도 그 뜻에 동의하셨고
우리도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전례의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독서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마리아가 천사의 알림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고 전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인간의 동의 없이는 하느님도 당신 뜻을 이루실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정말 그런 것인가?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연히 그럴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럴 뜻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뜻을 존중하시어 당신 뜻을 꺾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뜻을 스스로 꺾고 당신 뜻을 스스로 따르도록
당신도 당신의 뜻을 능력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우리의 사랑의 응답을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응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아무리 오시려고 해도 오지 못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마리아께서 주님 뜻에 사랑으로 응답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리아에게 수태되신 것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주님을 수태하신 것입니다.
두 분의 응답은 능동적인 수동태이고 위대한 수동태입니다.
사랑의 응답이었기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이 있었기에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사람이 주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성탄도 그렇고 마리아의 수태도 신성과 인성의 교환이고,
그래서 오늘 전례의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동정 마리아의 모태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구세주의 신비를 찬양하고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도 마리아처럼 신성을 잉태함으로써 주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주님 신성의 참여에 초대받는 우리가
사랑으로 응답까지 하는 우리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