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첫째 가는 계명을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대상은 셋입니다.
첫째는 하느님이고
둘째는 이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둘이지만
사실 둘째는 이웃이 아니라 나 자신이고
이웃은 셋째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 자신 그리고 이웃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의 대상에서는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랑의 모습을 볼 때 더 확실해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나 자신을 미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을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은 사람은
옆 사람에게도 너그럽지 못합니다.
즉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지
사랑받으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사랑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에서 느끼는
어려움의 방식은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받는 것에서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때에 따라 받다가도 못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여기에서의 어려움은
우리가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나를 사랑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랑받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미 나를 향해 오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이미 나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내가 사랑받는 사람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내가 사랑받는 사람임을
알아차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