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은 모두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그가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생각했을 때 자신보다 의롭지 않다고
아니 오히려 죄인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입니다.
이미 그는 자신이 의롭다고 판단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그는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단식하며 십일조를 내는 것은
엄청난 노력입니다.
그 노력은 그를 완벽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완벽함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하느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굳이 하느님께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바리사이와 세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가 생각하는 신앙인은
자신의 노력으로만 완벽에 도달하는 사람이며
세리가 생각하는 신앙인은
하느님께 의지해서 완벽에 도달하는 사람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느님과의 관계로 생각한다면
바리사이의 방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방법은 오히려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의 동사는 수동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동태 문장은
많은 경우 하느님을 그 주체로 봅니다.
즉 '하느님께서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필요없는 바리사이는
하느님께서 그가 의롭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필요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노력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 생활의 기준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그것을 놓친다면
우리는 엉뚱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만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