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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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요한 4,45)
사마리아인과 갈랄래아 사람들의 믿음
가장 심하게 예수님을 험담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을 아십니까? 어떤 이는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은 다 예수님을 모욕히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비난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사마리아인이고 마귀 들린 자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요한 8,48)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보십시오! 사마리아 사람들도 갈릴래아 사람들도 믿었습니다. 유대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데,갈릴래아 사람들보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더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한 여자의 말만듣고도 그분을 맞아들인 데 반해, 갈릴래아 사람들은 그분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보고서야 그분을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7
지성을 버리고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라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루카 2,42).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육체가 영을 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영이 자기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육체에다 참회의 고삐를 씌워 육체를 속박하고, 육체에다 짐을 지워 육체를 복종시키기를 원하거든, 육체에다 사랑의 재갈을 물리십시오. 여러분은 사랑을 통해서 육체를 가장 빨리 정복하고, 육체에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을 미끼로 삼아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사랑은 낚시바늘과 흡사합니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으려면 먼저 물고기가 낚시바늘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물고기가 낚삿바늘을 꿀꺽 삼켜 버리면, 낚꾼은 그 물고기를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낚시바늘을 삼킨 물고기가 아무리 버둥거리고 휘저어도 낚시꾼은 그 물고기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랑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가장 극심한 속박을 받을 테지만, 그것은 달콤한 짐일 것입니다. 이 달콤한 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고,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이 참회와 고행을 통해 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나아갈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치건 간에, 하느님께서 어떤 짐을 부과하시건 간에, 그것을 흔쾌히 짊어지고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모든 악행을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달콤한 사랑의 구속만큼 여러분을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데려다 주는 것도 없고, 여러분과 그분을 이어 주는 것도 없습니다. 이 길을 찾은 사람은 더 이상 다른 길을 찾지 않습니다. 이 낚시바늘을 꿀꺽 삼킨 사람은 하느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그의 손과 발, 입, 눈, 마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지체는 언제나 하느니의 소유입니다. 여러분이 적을 물리치고, 적이 여러분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면, 사랑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나다. 아가서의 저자가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하고, 저승만 큼이나 잔혹한 것" (8,6)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죽음은 영혼을 육신으로부터 떼어 놓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영혼으로부터 떼어 놓습니다.(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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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1. 교황 프란치스코의 찬미받으소서 1-2항
1. 찬미받으소서 (LAUDATO S1').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라고 노래하셨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 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 "
2.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구는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창세 2,7 참조). 우리의 몸은 지구의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공기를 마시며 지구의 물로 생명과 생기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