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오늘 복음에서 병자는 주님을 ‘건강하게 해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렇지요. 주님은 건강하게 해주시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주님을 생각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 병자가 38년 앓는 동안 성전을 오간 사람이 부지기수였지요.
그런데 그들 중 아무도 그를 건강하게 해주지 않았고 주님만 건강하게 해주셨지요.
그래서 저도 그 부지기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성찰을 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건강하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병들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도 성찰해봤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의도적으로 누구를 병들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제 기가 너무 세서 기가 약한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있겠지요.
또 사랑하긴 하지만 제 사랑이 적절치 않아
어떤 때는 사랑의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잘못되게 만들고,
어떤 때는 사랑의 물을 좀 적게 줘서 잘못되게 만들지요.
또 어떤 때는 너무 오냐오냐하다가 온실 속의 꽃처럼 연약하게 만들고
어떤 때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너무 들볶아 시들시들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나라는 성전에서 사랑 곧 생명의 물이 흘러나오지 않고,
미움 곧 죽음의 물이나 욕심으로 오염된 물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바오로는 사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성전이어야 하는데 성전이 아니니,
하느님의 영께서 머무셔야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데
사랑의 영이 머물지 않으니 우린 성전도 아니고 생명의 물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나 개인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물지 않고 육의 영이 머물면 우리는
욕심과 탐욕이 충돌해 싸울 것이고,
주장과 주장이 충돌해 싸울 것입니다.
비난과 욕설이 충돌해 싸울 것이고,
미움과 분노가 충돌해 싸울 것입니다.
그러다 서로 다치고 병들어 자기도 죽고
생명의 물이 아니라 죽음의 물이 흘러나와 주변도 죽을 것입니다.
여기서 옛날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 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오늘 에제키엘서에서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나고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라고 하는데
우린 생물이 우글거리는 성전인지 죽음이 판치는 복마전인지 돌아보는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