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째 날: 생명의 한계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삶에서 진정한 한계는 우리가 죽음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생명의 길이는 단순히 당신이 삶의 진가를 살고 있음을 보장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느 순간에 죽을 것임을 아는 이들이 (억지처럼 보이지만)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고 다른 이에게도 자비심으로 함께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낮 동안 당신의 죽음과 또한 당신과 이야기 나누는 이의 죽음에 대해 묵상해보라. 일과 중에 이 묵상에로 돌아가보고, 집으로 오는 길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수행이 당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라.
첨언) 중세의 사람이었던 프란치스코는 당시 중세인들이 묵상하던 죽음에 대해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죄 중에 죽은 영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는 짧은 이 세상에서 육신과 영혼을 잃고 끝없이 고통받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프란치스코는 여기서만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죽음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을 알아차리고 이를 향해 나아갔고 또한 다른 이들도 이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초대를 합니다. 그는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며 창조와 구원을 이루시는 분임을 알았고, 하느님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우리의 응답으로 하느님의 생명은 더 넓고 깊게 확산됨을 알았다. 우리의 응답은 나를 내세우고 나를 살리는 것에 반하기에 우리에게 죽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통해 하느님에 의해 생명으로 전환되게 된다.
프란치스코에게 이러한 응답은 낮추임, 따름, 섬김, 하느님께 돌려드리고 이웃에 나누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에서 죽음은 생명으로 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