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대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들을 나열하는데 공통점은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을 위한 마음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자리에는 하느님 말씀과 사랑을 위한 자리가 없고,
그분이 보내신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도 우리도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 안에 하느님과 주님을 위한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마음 안에 다른 것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겠지요.
베틀레헴 여관이 만원이어서 주님 머무실 방이 없었고,
출퇴근길 버스가 꽉 차서 내가 탈 여유가 없는 것처럼.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 마음의 여유가 왜 없는지 얘기하는데
현대인의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그래서 ‘다른 이를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도 없으며’ 그 결과로 현대인의
마음이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얘기하렵니다.
우리 마음에 하느님 대신 자녀가 차지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옛날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중시하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자기애가 크기 때문이고 부모 사랑보다 자식 사랑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일까 자녀를 위한 미사가 대부분이고,
생미사든 연미사든 부모를 위한 미사 봉헌이 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아니, 요즘 사람들은 부모가 아프면 걱정은 해도 기도나 미사는 드리지 않고,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후회는 해도 기도나 연미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아무튼 하느님을 위한 마음자리가 이렇게 저렇게 없어서 결과적으로
마음의 병들이 생기는 거라고 앞서 봤듯이 복음의 기쁨은 지적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위한 마음자리가 없기에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것이라면,
심리학에서는 마음 병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겠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 없음이 병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자리엔 무엇이 있을까?
하느님을 위한 마음자리가 있을까?
그래서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