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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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요한 7,28)
예수님을 인간으로는 알지만 하느님으로는 알지 못하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알기도 하고 알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만 내가 누구에게서 왔는지는 모른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곧 내가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것과 나의 부모를 안다’는 뜻이지요. 그들은 그분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 말고는 인간 예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러니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는 그분의 말씀은 옳습니다. 그들은 육에 따른, 인간의 모습이신 그분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의 신성에 관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7
지성을 버리고 순수한 무지를 경험하라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루카 2,42).
액카르트는 이 부정의 길을 설명하기 위하여 성서에서 많은 이미지를 끌어낸다. 예를 들면, 광야와 독거의 이미지는 호세아와 시편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이제 나는 그를 꾀어 내어 빈 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호세 2,16),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있다면
안식처를 찾아 날아가련만,
멀리멀리 광야로 가서 숨어 있으련만,
안전한 곳으로 쏜살같이 날아가
휩쓸어 가는 폭풍을 피하련만,
그 독살스런 혀끝에 말려들지 않으련만(시편 55,6-9).
우리는 이러한 광야와 사막을 체험하기 위한 방법을 앞의 세 편의 설교에서 다루었다. 그 방법은 바로 버림이다. 일단 우리가 텅 비우기만 한다면, 하느님이 그 텅 빈 곳을 기득 채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 하느님은 텅 빈 곳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의지로는 가득 채울 수 없다. 가득 채움이 일어나려면, 이성과 의지를 버려야만 한다.
여러분이 정녕 여러분의 의지와 여러분의 지식에서 벗어나는 곳이 어디든 간에, 하느님은 참으로 기꺼이 안으로 들어가셔서 자신의 찬란한 빛을 발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아실 때마다. 여러분의 지식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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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5. 프란치스코와 자연의 재앙
한번은 프란치스코가 그레치오의 은둔소에서 지내고 있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친 일련의 재해 때문에 형편이 나쁜 처지에 빠져 있었다. 탐욕스런 늑대 떼가 그 지역의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것이며 옥수수밭과 포도원은 매년 우박으로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그들에게 설교하던 중에 그들에게, "만일 여러분이 나를 믿고 참된 고백을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자신들을 위해 자비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전능하신 하느님의 영예와 영광으로써 이러한 온갖 재난이 곧 끝날 것이며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축복을 풍부히 내리시리란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태도가 불손하게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간다면 당신의 곤경은 되살아나고 전보다 더 극심해질 것이며 하느님의 분노가 두 배로 가중될 것이라는 것도 또한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마을 사람들은 프란치스코의 충고대로 회개하였다.
그러자 그 순간부터 그들의 고통은 끝이 났다. 위기는 지나갔고 늑대 떼와 우박은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았다. 사실 이웃 땅을 황폐시킨 우박을 동반한 폭풍은 그들의 땅 가까이 와서는 멈추거나 진로를 바꾸어 갔다.
우박과 늑대 무리는 프란치스코와 맺은 계약을 지켰으며 동의한 대로 사람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한 그들을 괴롭히려 하지 않았으며 지금 그들은 선한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너무나 놀라운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야생동물들을 복종하게 하고, 숲의 짐승들을 길들이고, 이미 길들여진 동물들을 훈련시키고, 인간의 원죄로 인하여 인간들과 원수가 되었던 맹수들을 다시 순종하게 한 성 프란치스코의 사랑에 찬 경건심에 대해 가장 큰 존경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경건심이며 이 경건심은 모든 창조물을 사랑이란 하나의 계약으로 뭉쳐 주기에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것은 현세의 생명을 약속해 줄 뿐 아니라 내세의 생명까지도 약속해"(1티모 4,8)주는 덕이다.
리에띠라는 지역에 한 치명적인 병이 소떼와 양떼에게 덮쳐 급속히 많은 소와 양을 죽게 하니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 한 믿음깊은 사람이 밤에 한 환시에서, 즉시 성 프란치스코가 머물고 있는 수사들의 움막으로 가서 그가 손발을 씻은 물을 얻어 가축떼 위에 뿌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움막으로 가서 성인의 동료로부터 은밀히 물을 구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병든 소떼와 양떼에게 뿌렸다. 그 동물들은 땅에 기진한채로 누워 있었으나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닿는 순간 그들은 즉시 정상적인 기운을 되찾고 일어서서 마치 언제 병들었었느냐는 듯이 목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오상에 닿았던 물의 기적적인 힘이 질병을 쫓아내고 가축들을 치명적인 병에서 구했다.
-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