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옵니다.
그들은 여인을 고발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말하면서
여인을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모세의 율법이 말하는 증인이나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간음을 배교와 같이 보았습니다.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믿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
간음을 저지른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여인이기에
예수님께서 그녀를 용서한다고 말씀하시면
하느님을 버려도 된다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죄를 확인하기 위해서
증거를 대라고 하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와
반대되는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즉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각자 자신에게로 돌리십니다.
여인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돌을 들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심판자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두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내가 지금 심판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된 사람들은
오히려 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나의 모습에는
심판자 말고도
죄인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여인처럼 드러나지만 않았지
숨겨진 저 밑에 있는 부끄러운 자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부끄러움에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우리가 신경 쓰지 않으면
우리의 시선은 계속 밖으로만 향합니다.
내 안에 감추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더 밖에만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밖에만 보다보면
우리는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우리 자신을 남을 심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느님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나 자신도 바라보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으로 서로 부족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