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오늘 주제를 말장난처럼 하면 ‘자처하다가 자초했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의 유대인의 눈으로 보면 주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다가
죽음을 자초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의 논리는 이것입니다.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신 것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유대인들이 말하지만
자처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는 과정에서 중요한 말씀을 하나 하십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신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에 대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당신만 신이 아니라는 말씀이고,
우리 인간도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은 당신의 신성을 밝힌 것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위상도 격상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격상시키는 조건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에는 그저 ‘받은’이라고 나와 있지만
‘받은’은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영어에 Receive가, 주니 단순히 받은 것이라면
Accept는,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말씀을 우리에게 내리셔도
그 말씀을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처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즈카르야처럼 의심하여 벙어리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영적 벙어리,
하느님과 대화 상대가 못 되는 영적 벙어리라는 뜻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대화 상대로 격상하셨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어로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영어와 하느님 말씀의 차이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영어가 지구 이쪽 말과 저쪽 말의 차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은 하늘의 말과 땅의 말의 차이잖습니까?
이것이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라고
며칠 전 주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의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처럼 하느님의 대화 상대자로 격상하셔도
바리사이들처럼 ‘나는 그런 말 모르겠고 아무튼
당신은 신성모독 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자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리사이처럼 영적인 말이 안 되는 사람,
그래서 주님께서 아무리 신분을 격상시켜 줘도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