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무덤에 모시는 것을 지켜보았던 여인들은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무덤으로 갑니다.
그들이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천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께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떠오르게 해 줍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돌아와
자신들이 겪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그때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것을 전해준 사람이 남자였다면 모를텐데
사건을 전해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인들 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여인들의 증언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부활 이야기를 헛소리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도 분명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무덤으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믿지 못하지만
헛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는 그 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는 무덤으로 갑니다.
믿기 어려운 부활
그렇다고 해서 증명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무런 소득 없이 헛걸음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일지라도
거짓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간직했다는 표현은 없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가톨릭 전례의 정점은 부활로
모든 전례가 부활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만큼 부활은 우리 신앙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부활을 쉽게 믿지 못하는 자신이
신앙 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부활은 분명 우리가 숙제로 생각하면서
믿어야 할 무엇으로 여길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머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선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부활이 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