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둘째 날: 침묵과 나아가 고독에 맛들이기
당신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새롭게 했고 자신에게 다가왔던 침묵을 경험한 장소들을 생각해보시오. 다음으로, 지금 당신이 1분이나 2분, 나아가 30분이나 1시간 동안, 침묵이나 고독 속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시오. (그리고 실행해보시오.) 마지막으로, 당신이 이 고요한 장소들을 얼마나 잘 이용했는지, 그리고 자기 중심에 들어가거나 혹은 단순히 숨쉬는 것에 몰두하기 위해 이 홀로 있는 시간의 부스러기들을 얼마나 잘 모을 수 있었는지 점검해보시오.
첨언) 사막의 교부들은 한적한 곳에 홀로 머물며 침묵과 고독에 맛들이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수도승들 또한 함께 살지만 고독을 소중하게 여기고 홀로 하느님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소침묵과 대침묵을 하곤 하였습니다. 어떤 글에서 고독을 애독과 함께 표현한 것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 저는 침묵과 고독을 지향했던 이들이 만났던 세계를 부족하나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도 고독과 홀로 있음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과 마음을 전하면서도 어김없이 은둔소나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것을 통해 하느님적인 것이 다가오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후드를 쓰거나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그 고독에 머물곤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프란치스코가 추구했던 고독과 애독은 장소적인 것을 넘어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한 봉사자가 형제과 형제들과의 관계에 어려움 때문에 기도생활을 더 이상하지 못해서 이 직을 내려놓고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편지를 프란치스코에게 했을 때, 프란치스코는 바로 그곳이 다른 어떤 은둔소보다 주님을 만나기 좋은 곳이라 조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권고에서 형제들이 만나는 반대와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것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 따름의 세계를 말하며, 바로 그곳을 또 다른 차원의 고독과 애독의 거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그곳을 그리스도의 거처로 삼는다면, 형제들은 바로 그곳에서 다시 낳음을 받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고 증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우리에게 다가온 부정적인 것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품고 그리스도를 통해 나와 너를 진정으로 섬긴다면, 우리에게 바로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