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 잘 하는 피조물도 부활의 생명과 기쁨을 구가하는데
제자들만은 아직도 죽음의 세력에 짓눌려 있다.
제자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음침한 다락방에 갇혀 있다.
그러나 누가 가둔 것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 갇힌 것이다.
왜 갇히게 되었는가?
절망감과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 주님을 잃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제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제자들도 있지만 이도저도 못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다락방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을 죽인 사람들 앞이 주님을 따르던 자기들도 죽일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셋째로 주님을 배반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기 죄 밖에 보지 못하니
얼굴을 들고 사람들 가운데로 갈 수도 없고
빛 가운데로는 더 더욱 갈 수 없어 어둠 가운데 안주하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 가운데 주님께서 서시어 평화를 빌어주시기까지 하신다.
참으로 난처하다.
죄 짓고 당신을 피해 숨은 아담을 너 어디에 있느냐 물으실 때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난처하다.
피해 숨어있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운데 떡하니 서서
한 제자, 한 제자를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평화를 빌어주시니.
피해 숨으려 하였는데 이제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다.
벌을 받던지 용서를 받던지 주님 앞에 나설 수밖에 없다.
난처하긴 하지만 그래도 주님의 눈길이 따스하니 용기를 낸다.
그 작은 용기, 그거 틀림없이 그 눈길 때문이었다.
그 눈길 때문에 차츰 제자들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이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었다.
그랬다.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
그랬더니 주님의 희망이 썰물처럼 밀고 들어와 절망을 몰아냈다.
두려움 대신 무엇이든 할 마음이 되었고 용기 충천하게 되었다.
배반의 죄책감은 배반한 주님을 위해 순교하고픈 마음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그들은 다락방 문을 열어 젖혔다.
박차고 나갔다.
거침없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하였다.
제자들의 기세에 눌려 사람들이 서서히 제자들에게 말려들었다.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은 제자들 앞에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의 충만함이 사람들까지 충만케 한 것이다.
그렇게 목숨도 가진 것도 다 내 놓으니
초대 교회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 아닌가?!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 잘 하는 피조물도 부활의 생명과 기쁨을 구가하는데
제자들만은 아직도 죽음의 세력에 짓눌려 있다.
제자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음침한 다락방에 갇혀 있다.
그러나 누가 가둔 것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 갇힌 것이다.
왜 갇히게 되었는가?
절망감과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 주님을 잃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제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제자들도 있지만 이도저도 못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다락방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을 죽인 사람들 앞이 주님을 따르던 자기들도 죽일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셋째로 주님을 배반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기 죄 밖에 보지 못하니
얼굴을 들고 사람들 가운데로 갈 수도 없고
빛 가운데로는 더 더욱 갈 수 없어 어둠 가운데 안주하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 가운데 주님께서 서시어 평화를 빌어주시기까지 하신다.
참으로 난처하다.
죄 짓고 당신을 피해 숨은 아담을 너 어디에 있느냐 물으실 때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난처하다.
피해 숨어있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운데 떡하니 서서
한 제자, 한 제자를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평화를 빌어주시니.
피해 숨으려 하였는데 이제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다.
벌을 받던지 용서를 받던지 주님 앞에 나설 수밖에 없다.
난처하긴 하지만 그래도 주님의 눈길이 따스하니 용기를 낸다.
그 작은 용기, 그거 틀림없이 그 눈길 때문이었다.
그 눈길 때문에 차츰 제자들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이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었다.
그랬다.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었을 뿐인데
그랬더니 주님의 희망이 썰물처럼 밀고 들어와 절망을 몰아냈다.
두려움 대신 무엇이든 할 마음이 되었고 용기 충천하게 되었다.
배반의 죄책감은 배반한 주님을 위해 순교하고픈 마음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그들은 다락방 문을 열어 젖혔다.
박차고 나갔다.
거침없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하였다.
제자들의 기세에 눌려 사람들이 서서히 제자들에게 말려들었다.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은 제자들 앞에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의 충만함이 사람들까지 충만케 한 것이다.
그렇게 목숨도 가진 것도 다 내 놓으니
초대 교회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 아닌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왜 요즘은 억울함이 많이 드는걸까요? 말의 금식이 항상 정답일까요?
매일 하늘의 공급을 사모하며...
어둠의 권세가 우리를 삼키기전에 우리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름모를 들풀과 잡초에게 조차도 자기를 내어주는 땅과 같이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