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오늘의 사도행전은 膽大해진 제자들의 얘깁니다.
매주 그러하듯 어제도 수련 형제들과 양로원에 가 미사를 드렸습니다.
독서대가 따로 없기에 앞 적당한 곳에서 독서를 해야 하는데,
어른들 앞이라서 그런지 겸손의 표시인지
청중을 정면으로 그리고 한 가운데 서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한 쪽 구석에 서서 비스듬히 보며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이 되어 선포하는 것이니
한 가운데로 나와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언젠가 신자들하고 미사를 드리면서 양형성체를 하게 했는데
어떤 분이 성혈을 어른 앞에서 술 마시듯 마셔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이가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실 때 우리의 술 예의는 겸손의 표시로
잔을 정면으로 기울이지 않고 몸을 돌려 마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하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리고 인간을 의식하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인간을 상대하는 게 아니고 주님을 상대하는 거고
내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때의 담대함은 인간적인 담대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인한 담대함입니다.
인간적인 담대함은 담력이 세거나 배짱이 좋은 담대함이지요.
담대膽大하다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膽, 곧 쓸개가 크다는 뜻이지요.
한의학에서는 쓸개가 용기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에
담력膽力이 셀 때 무엇을 함에 있어 두려움 없고 용감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담력이 세고 배짱이 두둑할 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고자 하는 것을 용감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합니다.
반면 쓸개 빠진 놈은 줏대가 없어
무엇을 할 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어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는 겁니다.
내장이라는 뜻의 gut에 용기, 배짱, 기운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양이나 동양이나
밥이 가득차면 배가 든든하듯
자기 존중감으로 내면이 꽉 차 있을 때,
곧 줏대가 확고할 때 배짱도 두둑하고 용기도 있다는 거겠지요.
그러나 신앙인의 담대함은 쓸개가 커서 담대한 게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제자들은 간이 콩알만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 다 도망친 사람들이며
유대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담대함은 쓸개와 장의 기운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사도행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 성령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차면 담대해집니다.
인간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성령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아주 자신 있게 얘기하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것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오늘의 사도행전은 膽大해진 제자들의 얘깁니다.
매주 그러하듯 어제도 수련 형제들과 양로원에 가 미사를 드렸습니다.
독서대가 따로 없기에 앞 적당한 곳에서 독서를 해야 하는데,
어른들 앞이라서 그런지 겸손의 표시인지
청중을 정면으로 그리고 한 가운데 서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한 쪽 구석에 서서 비스듬히 보며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이 되어 선포하는 것이니
한 가운데로 나와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언젠가 신자들하고 미사를 드리면서 양형성체를 하게 했는데
어떤 분이 성혈을 어른 앞에서 술 마시듯 마셔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이가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실 때 우리의 술 예의는 겸손의 표시로
잔을 정면으로 기울이지 않고 몸을 돌려 마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하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리고 인간을 의식하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인간을 상대하는 게 아니고 주님을 상대하는 거고
내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때의 담대함은 인간적인 담대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인한 담대함입니다.
인간적인 담대함은 담력이 세거나 배짱이 좋은 담대함이지요.
담대膽大하다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膽, 곧 쓸개가 크다는 뜻이지요.
한의학에서는 쓸개가 용기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에
담력膽力이 셀 때 무엇을 함에 있어 두려움 없고 용감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담력이 세고 배짱이 두둑할 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고자 하는 것을 용감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합니다.
반면 쓸개 빠진 놈은 줏대가 없어
무엇을 할 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어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는 겁니다.
내장이라는 뜻의 gut에 용기, 배짱, 기운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양이나 동양이나
밥이 가득차면 배가 든든하듯
자기 존중감으로 내면이 꽉 차 있을 때,
곧 줏대가 확고할 때 배짱도 두둑하고 용기도 있다는 거겠지요.
그러나 신앙인의 담대함은 쓸개가 커서 담대한 게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제자들은 간이 콩알만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 다 도망친 사람들이며
유대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담대함은 쓸개와 장의 기운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사도행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 성령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차면 담대해집니다.
인간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성령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아주 자신 있게 얘기하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것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소생하는 새 봄의 기운으로...
부활하는 새 생명의 약동으로...
새 힘 얻으시고 충만한 나날되시길 기도합니다.
성령충만함은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충만함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불을 더욱더 뜨겁게,,
타올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립니다.
성령충만함은 반복적으로 우리의 삶의 임하는 은총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욱 담대하게 능력을 가지고 복음 증거 할 수,
있게 하시는 것 입니다.
늘~깨어 있게 하소서.
진리로 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