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격려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오로는 교회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격려합니다.
이것은 자기는 아무 일 없이 평안하고
고통과 환난을 겪는 다른 이에게만 잘 견디라는 그런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자주 저의 말이 많은 경우 빈말이고
저의 말에 참으로 힘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고통과 환난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환난과 고통을 겪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은 그런 면에서 힘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후서 11장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중 돌질을 당한 것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얘깁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이고니온에서 돌질을 당하는 것을 피해
리가오니아 지방으로 가서 전도를 하였는데
이고니온 사람들이 이곳까지 쫓아와서 결국 돌질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집요함도 대단하지만 이런 돌질을 당해도 꺾이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난을 당해야 한다고 격려하는
바오로 사도가 참으로 대단하고 그 격려가 참으로 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돌질이건 파선이건 환난에 끄덕 않는 사람이라야
좁은 문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제는 수련형제가 이런 강론을 하였습니다.
요즘 수도원에 여러 행사가 활기차게 열렸습니다.
활기차서 좋기는 한데 자기는 예쁜 아가씨들한테 자꾸 시선이 가서
하느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어 오히려 기운이 빠집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그래서 요즘 “절박하게” 기도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런 얘기를 솔직히 얘기하는 형제가 너무 순수하고 진지해서
귀엽고 예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는데,
제가 진즉 얘기한 바가 있어서 잘 극복할 거라 믿습니다.
제가 얘기한 것은 이것입니다.
수련기는 다른 때보다 안정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우리가 복음적인 불안정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안정 가운데서 안정을 살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불안정 가운데서 안정을 살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불안정 가운데서 살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환난이 없는 하느님 나라는 신기루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천국이어야지 진짜 천국입니다.
그제 새터민들과의 야외행사때
새터민이 어떻게 지내냐고 인사를 하기에
제가 농담 삼아 “일 없슴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우리말에 괜찮다는 뜻을 북에서는 일 없다고 하지요.
"It doesn't matter"와 “I don't care"와 비슷한 관계라고 할까요?
중국말의 메이관시처럼 그것이 어떠하든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기에 문제될 것 없다는 거지요.
아무 일 없어야 괜찮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은 나이어야 괜찮은 겁니다.
오늘 복음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도 이런 평화일겁니다.
그리고 이런 평화가 천국의 평화일겁니다.
안 좋은 일 아무 것도 없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 사랑 때문에 어떤 환난이 있어도 평화로운 평화말입니다.
그럼 나의 평화는?
당신의 천국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오로는 교회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격려합니다.
이것은 자기는 아무 일 없이 평안하고
고통과 환난을 겪는 다른 이에게만 잘 견디라는 그런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자주 저의 말이 많은 경우 빈말이고
저의 말에 참으로 힘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고통과 환난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환난과 고통을 겪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은 그런 면에서 힘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후서 11장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중 돌질을 당한 것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얘깁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이고니온에서 돌질을 당하는 것을 피해
리가오니아 지방으로 가서 전도를 하였는데
이고니온 사람들이 이곳까지 쫓아와서 결국 돌질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집요함도 대단하지만 이런 돌질을 당해도 꺾이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난을 당해야 한다고 격려하는
바오로 사도가 참으로 대단하고 그 격려가 참으로 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돌질이건 파선이건 환난에 끄덕 않는 사람이라야
좁은 문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제는 수련형제가 이런 강론을 하였습니다.
요즘 수도원에 여러 행사가 활기차게 열렸습니다.
활기차서 좋기는 한데 자기는 예쁜 아가씨들한테 자꾸 시선이 가서
하느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어 오히려 기운이 빠집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그래서 요즘 “절박하게” 기도한다는 거였습니다.
이런 얘기를 솔직히 얘기하는 형제가 너무 순수하고 진지해서
귀엽고 예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는데,
제가 진즉 얘기한 바가 있어서 잘 극복할 거라 믿습니다.
제가 얘기한 것은 이것입니다.
수련기는 다른 때보다 안정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우리가 복음적인 불안정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안정 가운데서 안정을 살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불안정 가운데서 안정을 살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불안정 가운데서 살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환난이 없는 하느님 나라는 신기루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천국이어야지 진짜 천국입니다.
그제 새터민들과의 야외행사때
새터민이 어떻게 지내냐고 인사를 하기에
제가 농담 삼아 “일 없슴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우리말에 괜찮다는 뜻을 북에서는 일 없다고 하지요.
"It doesn't matter"와 “I don't care"와 비슷한 관계라고 할까요?
중국말의 메이관시처럼 그것이 어떠하든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기에 문제될 것 없다는 거지요.
아무 일 없어야 괜찮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은 나이어야 괜찮은 겁니다.
오늘 복음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도 이런 평화일겁니다.
그리고 이런 평화가 천국의 평화일겁니다.
안 좋은 일 아무 것도 없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 사랑 때문에 어떤 환난이 있어도 평화로운 평화말입니다.
그럼 나의 평화는?
당신의 천국은?
매일 풍성하고 깊은 말씀으로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하시는 연피정 위에 은총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영적인 말씀을 주시는 영적인 아버지이신
당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과 함께하여 늘 평화를 누리겠습니다.
신부님의 모든 일마다 때마다 평화의 주님 함께하시기를..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엮은 꽃 한 다발 두고갑니다..
"지상의 하느님들"인 여러분들은 정말 훌륭하고 위대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사랑은 칭송받아 마땅하고 오늘은 축하받아 마땅합니다.
오늘부터 당분간은 말씀 나누기를 쉴까 합니다.
5월 21일부터 1주간 모 교구 사제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 피정 지도를 해야 하는데
앞으로 수련자 강의에다 그 피정 강의를 준비해야 합니다.
피정 강의 준비가 마쳐지는 대로 다시 말씀 나누기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