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잃은 양>이란 어떤 양을 일컫는 것일까요?
길잃은 양일까요?
떠나간 양일까요?
불쌍한 양일까요?
괘씸한 양일까요?
양을 중심으로 얘기하면
실수나 잘못으로 길을 잃어버린 양일 수도 있고,
목자가 싫어서 떠나가거나 양떼가 싫어서 이탈한 양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목자나 양떼를 중심으로 얘기하면
길 잃은 양은 불쌍한 양이 될 것이고,
떠나간 양은 괘심한 양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어떤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 주님은 목자와 양떼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데
그중에서도 목자의 입장에 더 비중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불쌍히 여기지만
양떼는 잃은 양을 목자와 같은 마음으로 불쌍히 여길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괘씸하게 여기거나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와 형제의 차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못으로 떠났건 싫어서 일부로 떠났건
잃어버린 것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며 불쌍히 여기는데
형제는 괘씸하게 생각하거나 적어도 못마땅해 합니다.
이렇게 부모지간과 형제지간이 다른 것은
잘못 낳았건 잘못 키웠건 자식의 모든 것이 부모에게는 무한책임인데 반해
형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책임의 차이 이상의 사랑의 차이 때문이라고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면,
그래서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그 사랑에 감사한다면
잘못 되어 있는 형제의 처지를 부모의 마음으로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믿는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필리비서에서 얘기하는 그 주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어떤 형제가 공동체를 떠났다면
나의 탓으로 떠난 것은 아닌지,
내가 그를 밀어낸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를 밀어내거나 나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닐지라도
찾으려는 나의 사랑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잃은 양이 찾지 않은 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잃은 양을 찾아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사랑을 기리는 이 대림시기,
우리도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