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하시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안식을 주겠다는 것이 짐 진 자의 어깨에서 짐을 벗겨주겠다는 뜻일까요?
더 이상 무거운 짐은 지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뜻인가요?
우리는 그런 것이기를 바라지만 미안하게도,
아니 애석하게도 주님은 벗겨주겠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저 안식을 주겠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짐이 없기를 아예 바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짐을 없애주시지 않고 당신에게 와서 쉬라고만 하십니다.
그것은 다른 데서 쉬지 말고 당신에게 와서 쉬라는 뜻입니다.
다른 데서 쉬면 안식을 얻을 수 없으니 당신 안에서 쉬라는 뜻입니다.
다른 데서 쉬는 것은 그저 짐 지는 것을 쉬는 것에 불과하지만
주님 안에서 쉬면 주님으로부터 짐을 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데서 쉬면 그저 짐 지는 것을 중단하는 것뿐이지
거기서 다시 짐을 질 수 있는 힘을 얻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쉬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이니
마치 방전된 건전지를 충전기에 꽂는 것과 같이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큰 힘을 얻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가는 것은 짐을 질 힘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져야 할 짐을 가볍게 또는 쉽게 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사실 짐이 무거운 것은 짐이 실제로 무거워 그렇기도 하지만
짐을 무겁게 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짐을 무겁게 지는 것은 짐을 지는 마음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짐을 무겁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짐을 무겁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담감이나 부담스러워하는 마음,
벗어버리고 싶고 뿌리치고 싶은 격한 마음 대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배우게 되면
이는 마치 몸에 꼭 맞는 배낭으로 짐을 지면 한결 가벼워지듯
온유와 겸손이라는 아주 훌륭한 주님의 멍에로 짐을 짐으로써
무거운 십자가를 가볍게 지게 됩니다.
안식이 없는 이유도,
짐이 실제보다 더 무거웠던 이유도
짐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뿌리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 마음에서
안식도 얻고 짐도 편하고 가볍게 지는 법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