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레네의 간호를 받는 성 세바스티안(1649)
작가 : 조르쥬 드라 투르 (Geroge de la Tour: 1593- 1652)
크기 : 캠퍼스 유채: 128 X 94cm
소재지: 프랑스 파리 루브르(Louvre) 미술관
작가는 17세기 프랑스의 화가로서 이력은 별로 알려 진 것이 없으나 이태리와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화풍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럽 화단에 큰 선풍을 일으킨 이태리 화가 카라바죠가 개발한 빛과 어두움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서 작품에 특성을 보이던 키아로시쿠로(Chiarosicuro)라는 기법을 촛불을 사용해서 표현함으로서 독창적인 화법을 창출했다.
작가의 이 놀라운 질감 표현의 비밀은 측면에서 비추는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미학에 있었다. 카이로스큐로 기법은 과거처럼 단순한 명암의 조화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정신(mind), 심리(psychology) 등의 다양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었고 작가는 집요하리만큼 대부분의 작품에서 촛불의 명암을 통해 다른 작가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성 세바스티안은 (288년 순교) 초세기 크리스챤 순교자로서 중세기에 이르기 까지 크리스챤들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던 성인이었다. 전승에 의하며 그는 크리스챤을 박해하던 로마 황제 디오클래시안의 근위 장교로서 총애를 받던 몸이었다.
그런데 황제는 고귀한 인품과 충직성으로 몹시 사랑하고 있던 부하 세바스티안이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갖은 회유로 그의 배교를 권했으나 그는 끝까지 완강히 거부했다.
황제는 그에게 신체적 고통을 줌으로서 그를 배교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몸을 화살로 찌르는 고문을 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자 사형에 처했다
전승에 의하면 숨이 끊어지기 직전 이레네 라는 과부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간호를 받다가 순교의 영광을 입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장면은 임종 직전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로마의 경건한 과부였던 이레네는 이 장한 순교자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기 집에 모셔 극진히 간호하였고, 그 가운데 그는 하느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전승에 의하면 임종 직전 그는 자신을 간호하기 위해 찾아온 이레네의 하녀 하나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임을 알고, 그의 시력을 되찾아 주는 기적으로 예수님의 위력을 재현하기도 했다.
그가 묶인 상태에서 화살을 맞아 치명상을 입은 나무 기둥에 그를 묶었던 줄이 드리워져 있고, 극도의 고통 속에서 방금 숨을 거둔 것처럼 보이는 성인이 누워 있다.
이레네와 함께 찾아온 일행은 너무도 슬프고 당혹스런 분위기에서도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뒤편의 두 여인들이 얼굴을 가린 모습에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슬픔을 읽을 수 있으나 앞의 두 여인은 너무도 차분한 모습이다.
붉은 옷을 입고 촛불을 든 여인이 이레네이다. 그의 붉은 옷은 소문으로 듣던 성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백미는 이 여인이 들고 있는 횃불이다. 이 불빛이 임종을 맞은 성인과 애도하는 여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겐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보여 주듯 불빛은 산 이와 죽은 이를 하나로 품고 있다.
마치 위령미사 감사송의 다음 부분을 연상시킨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초 세기부터 성인은 신심 깊은 신자들의 공경 대상이 되면서 고틱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공통점은 매우 세련된 미남자에 아름다운 반나체의 모습으로 기둥에 묶인 상태에서 화살을 맞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반나체이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몸은 하느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에 인간적인 가치에 눈뜨기 시작한 르네상스부터 희랍 예술의 표현처럼 성 미술에서도 나체에 대한 과감한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에서 성 세바스티안 역시 반나체로 기둥에 묵인 상태에서 화살을 맞고 있는 매력적인 육체의 남성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자체 정화를 시도했던 바로크 시대가 되면서 신체 묘사는 다시 새로운 변신을 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처럼 단순히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 육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숨길을 불어 넣으신 육체로서의 신앙의 의미성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이 작품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제작된 것이다.
작가 역시 여인이 들고 있는 횃불이 만드는 빛과 그림자의 절묘한 표현으로 성인의 육체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순교한 영성적 모습으로 드러나게 만들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소박하고 비천한 신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전체가 빛과 그림자로 대비되는 것처럼, 비록 반나체이긴 하나 고귀한 품위를 풍기는 성 세바스티안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문객의 소박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얼굴에나 옷차림에나 장식이 하나도 없는 검박한 모습이며, 성인의 죽음 앞에 조가(弔歌)를 바치는 합창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성모님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위한 의도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는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루카 1: 46- 49)
작가의 죽음 후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까마득히 잊혀지다가 독일 학자인 헤르만 보스(Hermann Voss)에 의해 진가가 조명되기 시작했으며 1935년 파리에서 그의 작품전이 개최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작가 생전에 이 주제는 여러 번 제작된 것이나,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성인과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서 성스러움과 비탄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