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활의 모습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아마 허벅지를 꼬집어보았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빛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의 언어는 맥을 못 춥니다.
물질적인 경험 세계가 아니라 영적인 경험 세계를 말해야 하기에
거기에 적합한 말이 별로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아도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루가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치 유령을 보는 듯, 무서워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
그런데, 나는 살과 뼈가 있단다.
자, 만져보아라....
의심을 버려라.
나야, 바로 나라고.
여기 먹을 것이 좀 없느냐?
그리고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셨다...고 기록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같은 것을 증언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성서 전문가들의 지적에 의하면
이런 전승은 2차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심과 궁금중을 풀어주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전승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선교적 동기에서 그런 전승이 생겼답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한 말이 필요하니까요.
복잡한 말로 해봐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저런 물질적인 경험 세계의 말로 설명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연구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신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살아 돌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야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분의 나타나심, 발현을 목격하고서야 성경을 자세히 읽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그런 언급이 과연 있을까?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 그런 식으로 버림받아 죽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그들은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성경을 재독, 삼독, 정독하였습니다.
시편과 이사야 예언서에 그런 언급이 어렴풋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를 보면,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구나.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는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었구나.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그는 우리의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이사 53,3-10)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 높이 솟아오르리라. (이사 52,13)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이사53,10-11)
환성을 올려라.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이사54,1)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아, 기뻐 뛰어라.
예루살렘이 망했다고 통곡하던 자들아, 이제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고 기뻐하여라.
너희가 그 품에 안겨 귀염 받으며 흡족하게 젖을 빨리라.
나 이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 끌어들이리라. (이사66,10-12)
예수님 제자들의 성경에 대한 결론
제자들은 저 말씀들을 오래 숙고하고 반성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극심한 고통, 수난, 십자가의 죽음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죄 때문이고, 인류의 죄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도 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셨다.
생명권, 심판권, 주재권 등 당신 전권을 예수님에게 주셨다.
하느님께서 의로운 당신 아들 예수를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받아들여
인류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면,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지키면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이 계획과 복음을 받아들여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기를 바란다.
이제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지역으로, 사방팔방으로, 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용약하고 환성을 지르십시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아마 허벅지를 꼬집어보았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빛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의 언어는 맥을 못 춥니다.
물질적인 경험 세계가 아니라 영적인 경험 세계를 말해야 하기에
거기에 적합한 말이 별로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아도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루가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치 유령을 보는 듯, 무서워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
그런데, 나는 살과 뼈가 있단다.
자, 만져보아라....
의심을 버려라.
나야, 바로 나라고.
여기 먹을 것이 좀 없느냐?
그리고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셨다...고 기록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같은 것을 증언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성서 전문가들의 지적에 의하면
이런 전승은 2차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심과 궁금중을 풀어주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전승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선교적 동기에서 그런 전승이 생겼답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한 말이 필요하니까요.
복잡한 말로 해봐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저런 물질적인 경험 세계의 말로 설명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연구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신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살아 돌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야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분의 나타나심, 발현을 목격하고서야 성경을 자세히 읽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그런 언급이 과연 있을까?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 그런 식으로 버림받아 죽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그들은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성경을 재독, 삼독, 정독하였습니다.
시편과 이사야 예언서에 그런 언급이 어렴풋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를 보면,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구나.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는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었구나.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그는 우리의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이사 53,3-10)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 높이 솟아오르리라. (이사 52,13)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이사53,10-11)
환성을 올려라.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이사54,1)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아, 기뻐 뛰어라.
예루살렘이 망했다고 통곡하던 자들아, 이제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고 기뻐하여라.
너희가 그 품에 안겨 귀염 받으며 흡족하게 젖을 빨리라.
나 이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 끌어들이리라. (이사66,10-12)
예수님 제자들의 성경에 대한 결론
제자들은 저 말씀들을 오래 숙고하고 반성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극심한 고통, 수난, 십자가의 죽음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죄 때문이고, 인류의 죄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도 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셨다.
생명권, 심판권, 주재권 등 당신 전권을 예수님에게 주셨다.
하느님께서 의로운 당신 아들 예수를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받아들여
인류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면,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지키면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이 계획과 복음을 받아들여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기를 바란다.
이제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지역으로, 사방팔방으로, 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용약하고 환성을 지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