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성령의 은총으로 저희 눈을 열어 주시어,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그분만을 믿게 하소서.”
오늘 미사의 본기도인데
사순 제 4 주일의 주제를 잘 담고 있어서 그대로 옮겨보았습니다.
지복직관至福直觀(Visio Beatifica)이라는 말이 있지요.
하느님을 직접 뵙는 참 행복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뵐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문제는 ‘어떻게 뵙느냐?’입니다.
복음을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예수를 보면서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기도도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고 있고,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소경은 태생소경입니다.
태생소경인 그에 대해 제자들은 주님께 묻습니다.
소경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본인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데 어찌 본인의 죄입니까?
그러니 본인의 죄가 아니라면 부모의 죄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특히 장애자의 부모들은 자기 죄 때문에 그런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본인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가 소경이 된 것이 굳이 죄 때문이라면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그러므로 모든 죄의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소경이 된 것이 아예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원인적으로 그가 소경이 된 것은 하느님의 일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며,
목적적으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기 위해서입니다.
소경이 된 것의 원인과 결과가 다 하느님께 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실제로 다른 공관복음의 소경치유의 얘기와 비교할 때
요한복음의 맹인은 태생소경인데다 고쳐달라고 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소경이 된 것도 그의 죄 때문이 아니고
눈을 뜨게 된 것도 그의 공로(간절한 청원) 때문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인간의 과실과 죄로 인한 장애자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공로(사랑)에 의한 장애의 치유가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사 모든 것을 인간의 죄와 공로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간 행위의 인과관계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의 눈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름 부어주실 사람이 누구인지
계속 헛다리를 짚는 사무엘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그리고 바리사이들도 태생소경이 눈뜨는 기적은 하늘의 표징이라면서도
안식일을 어긴 죄인 예수가 어찌 그런 일을 했는지 계속 의아해 하는데
이런 그들에게 태생소경이었던 사람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영의 눈의 가져야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열리는 성령의 은총을 오늘 본기도처럼 청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