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무슨 죄로 죽게 되시는지 보여줍니다.
유다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안식일 관련 율법을 어겼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었던 당시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저도 오늘 신성모독적인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저는 저의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에서 하느님의 딸로 돌려드렸습니다.
더 이상 저의 어머니로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해드리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모자의 인연으로 어머니를 묶지 않겠다는 표층적인 의식과는 달리
누르고 눌러도, 아니 누르면 누를수록 저 깊은 곳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계면조로 올라오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이신 하느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하느님이신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입니다.
오늘 이사야서도 하느님 사랑을 어머니 사랑에 비유하지요.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느님 어머니’라고 하고
주님의 기도도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느님이 더욱 가깝게 제게 오시고,
살리시는 주님의 사랑이 더 살갑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주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