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리스도와 메나(Mena)원장
작 가 : 이집트 바오잍(Baouit) 수도원( 7세기 )
크 기 : 75X 57cm
소 재 지 : 프랑스 빠리 루브르 미술관
근래 종교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에게는 생소하면서도 자주 대하게 되는 것이 동방교회의 이콘(Icon)이다. 박해에 시달리던 로마의 교회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274- 337)가 325년 로마제국의 수도를 오늘 터키의 이스탄불로 옮겨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olis)로 부르면서 이곳은 로마 문화와 전혀 다른 비잔틴(Byzantine) 문화가 형성되었다. 교회 미술에 있어서도 로마로 대표되는 서유럽과 전혀 다른 독창적인 화풍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그리스, 러시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으로 퍼지게 된다.
그중에 대종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와 러시아 이콘인데, 그리스 이콘은 소박하면서도 정제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이슬람 세력의 이웃이었던 오스만 터키에 시달리며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민중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반면, 러시아 이콘은 비잔틴 영향을 강하게 받아 부드러운 색상으로 귀족적이며 우아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이집트의 이콘인데,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특수한 어려움속에 살아야 했던 콥트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성장한 것이다. 콥트(Copt)란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로 변하기 이전 사용되던 토속 언어로서 이집트라는 말인데, 이집트가 630년경 이슬람으로 변하면서 아랍어를 사용하자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 언어는 사라지게 되고 교회 안에만 남아 이집트의 크리스챤을 호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즉 콥트 교회란 이집트의 교회를 말한다.
이집트 교회는 역사전체가 한 마디로 박해와 순교의 여정으로 이어진 삶이었다. 성 마르코 사도에 의해 이곳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대단한 교세 확장을 하게 되고, 여러 탁월한 신학자들과 성인들을 배출하면서 로마와 구분되는 고유한 신앙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415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관점에서 신성을 강조하는 단성론이 단죄되면서 이들은 믿음의 형제들인 크리스챤들로 부터 이단 취급을 받게 되면서 대단한 박해를 당하게 된다.
그전의 에페소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한 네스토리우스가 단죄되었는데, 이번은 반대의 단죄가 되는 셈이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나고 있는 할례의 수용문제로 팽팽한 대립상태에 있던 예루살렘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가 성령의 인도로 서로 다른 견해를 수용하면서 화합과 성장의 길을 찾았던 아름다운 전통이 사라지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미명으로 형제를 단죄하는 슬픔과 갈등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이집트 교회는 바로 이런 고통과 박해로 희생된 모델이 되었다.
종교가 글귀나 법규에 사로잡히면 얼마나 광기의 폭력이 생기게 되는지를 교회 역사에서 볼 수 있으며 이집트 교회 형제들이 같은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당해야 했던 박해는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박해 가운데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 시작된 무슬림들이 들어오면서 자기들을 받아들이면 크리스챤 형제들로부터 받는 박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에 솔깃해져서 무슬림을 받아들이게 되나 이것은 새로운 화근의 원인이 되었다.
이들은 크리스챤 형제들에게 받았던 박해와 또 다른 형태의 박해, 즉 개종을 강요하며 삶과 죽음의 양자택일로 위협하는 고통을 무슬림들로 부터 당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오늘 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이들의 역사는 박해가 이어지는 삶이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을 자기 몸으로 채운다는” 사도 바울로의 말을 증거하는 특수한 삶이 되었기에 같은 크리스챤이면서 우리와 다른 신앙 표현과 전통이 형성되었다.
오늘 까지 이들은 무슬림 교도들의 틈바구니에서 취직이나 다른 여러 면에서 사회적인 불이익을 감내하며 살아야하니 젊은이들 중에는 신앙을 떠나 기득 종교인 무슬림으로 개종하고픈 유혹을 받을 수 있기에, 이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이들은 감동적인 시도를 하게 되었다.
즉 아기가 태어나면 삭힌 염소젖을 바늘에 묻혀 팔에 문신을 새김으로서 이들은 어떤 어려움과 개종의 유혹 속에서도 자신이 크리스챤임을 일깨우게 만들었다. 그러기에 오늘도 꼽트 교도들은 손목 가까이 있는 십자가 문신이 바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표징인 것이다.
이들은 순교나 박해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순교나 박해의 현장 체험 속에 살고 있기에 이들의 신앙은 강렬하고 순수한 면이 특징이다. 년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콥트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믿음의 한 형제로 받아들임으로서 신앙 표현의 차이 때문에 형제를 박해하던 과거의 부끄러움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신앙의 내용은 동일하나 표현이 다양할 수 있는 것처럼 콥트 형제들의 신앙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순수하고 강렬함이 있기에 이들을 받아 들임으로서 새로운 풍요로움을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목판에 그린 아이콘 중에 가장 오래 된 것이며 수도원에서 제작된 것이기에 투박하며 그 내용뿐 아니라 과정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솜씨가 아닌 신앙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오늘날에도 콥트 교도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이집트 중부 지역 메나의 수도원장인데, 그리스도와 나란히 서 있는 소박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이다.
러시아나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성화와 달리 이 작품은 색채 처리나 모든 면에 있어 서방에 비겨 초라하리 만큼 검소한 형태인데, 이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의 흔적이라 숙연한 마음을 들게 한다.
무슬림 교도들의 틈바구니에서 박해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들 삶의 힘겨운 흔적이다. 원장의 얼굴은 지친 가운데서도 평온한 모습이다. 원장의 오른 손에는 조그만 두루마리가 들려져 있는데, 이것은 복음의 내용을 적은 규칙서이다.
이집트는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수도생활이 시작된 곳이며, 수도생활의 시조(始祖)인 성 안토니오(251- 356)는 마태오 복음 19장 21절에 나타나고 있는 말씀 “당신이 완전해지려고 하면 가서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따라 모든 재산을 다 처분하고 수도생활을 시작함으로서 서방교회에 수도생활을 태동시켰다.
이 원장의 손에 들린 것은 복음을 기초로 만든 수도 규칙이며 주님을 따르기에 너무 부족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것은 성 프란치스꼬의 유언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너무 어울리는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몇몇 형제들을 주신 후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순간 자신의 나약하고 부족한 면을 보면서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을 시작한 프란치스꼬처럼 이 원장 역시 오른 손에 복음적 삶을 내용으로 한 규칙서를 들고 왼손으로는 주님을 가르치고 있다,
왼손에 쥐어진 초라한 규칙서가 자신의 부족함에서 오는 두려움의 표현이라면 주님을 가르치는 왼손은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라는 자신의 신앙고백과 함께 그분이 자기를 인도해 주실 것이기에 마음 든든하다는 깊은 신뢰의 표시이다.
이 작품이 제작될 당시는 무슬림 교도들이 활약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박해가 시작될 때이기에, 오랜 형제들의 박해에 시달린 이들에게는 참으로 걷잡을 수 없는 실망의 시기였다. 이런 처지에 희망이 필요했고, 이 원장의 모습은 이런 상황에 꼭 필요했던 희망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원장의 오른 손에 들려 있는 초라한 규칙서와 달리 주님의 오른 손에는 장중하면서도 기품 있는 성경이 들려져 있다. 주님 손에 들린 성서의 표지는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원장의 손에 들린 것과 전혀 다른 값진 것이며, 이 성서를 들고 계시는 주님 역시 원장과 달리 믿음직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록 주님을 향한 그리움에 빠져 복음적 삶을 살기로 결심한 원장이지만 자신의 허약함과 새로 시작되어 호전적 성격을 띄고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고 있는 무슬림들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데, 주님 손에 들린 보석으로 장식된 성경은 이 어려운 환경에서 겪어야 하는 두려움 극복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마르코 복음 5장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분은 왜 겁을 냅니까?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합니까?” 라는 말씀으로 거센 파도에 흔들리는 바다를 평정시키는 주님을 상기시키면서, 주님 말씀의 인도를 받을 때 어떤 경우에도 보호받는 삶을 살 수 있음을 확인시킨다.
요한복음 8장 12절의 말씀은 주님 손에 들린 성서의 전제적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오히려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규칙서를 쥐고 있는 원장의 어깨를 왼손으로 감싸고 계신다. 믿음이란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기에 주님은 복음적 삶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약함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두려움에 빠져 있는 원장의 어깨에 손을 얹어 이것을 확인시키신다.
마태오 복음 마지막 부분에 있는 “나는 세상 종말까지 어느 날이나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마태오 28: 18)의 말씀처럼 당신 제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원장을 격려하고 계신다.
그러나 주님과 원장은 전혀 다른 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장의 후광은 어둠이 없는 빛이며 의복 역시 밝은 색이지만, 아름다운 성서를 쥐신 주님이 입으신 옷과 전체 색깔은 어두운 검은 빛깔이다.
원장의 밝은 모습과 대조적으로 주님은 어두운 머리 색깔과 함께 전체가 어둠에 싸여 있으며 마지막 구분은 주님의 후광에는 검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제자로서 걸어야 할 결정적 미래의 모습이며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는 제자의 삶이란 십자가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 누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마태오 16: 24)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주님은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원장을 다정히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 제자직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에 있음을 상기시키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주님 손에 들린 말씀을 따라 생명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매일 주님처럼 십자가의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부활의 승리나 영광의 모습에 대한 언급은 없고 십자가의 길에 충실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면서 안정세를 누리고 있는 교회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 교회는 300년의 박해기간을 끝내고 종교자유를 얻으면서, 박해받던 처지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있는 집단으로 변모되면서 박해속에서 정화된 맑은 모습을 잃게 되고, 신앙의 이완현상이 생기면서 복음적 향기를 상실하게 되고 어느 종교 집단처럼 부패의 수렁을 거닐어야 했다.
이런 처지에서 “박해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하나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나 이집트 교회는 역사 전체를 거쳐 이 말씀을 체험하는 삶이 되었기에 부패할 겨를이 없이 정화의 삶을 살게 되었다.
“복되어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나 때문에 그대들을 모욕하고 박해하며 그대들을 반대하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 그대들은 기뻐하고 신명을 내시오. 그대들이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태오 5장 10- 12).
우리 교회는 박해시기를 제외한 역사의 어떤 순간, 이 말씀을 체험하기 어려운 안정되고 보호받는 삶을 살았기에 신앙이 어떤 제도의 추종이나 아니면 집단에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 없는 타성에 머물기 쉬운데, 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원장과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일깨워야 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근본적인 삶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
풍요와 안일은 언제나 부패로 이어진다는 것은 종교계에도 변함없는 진리이며, 복음의 핵심을 철두철미하게 살고자 시작된 수도 생활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에 예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 박해와 순교의 어려움 속에 살았기에 중세기에 볼 수 있는 우리 교회처럼 부패할 기회가 적어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고, 서방교회의 제도화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성직자가 주도하는 중앙집권적인 교계제도 보다 하느님 백성의 교회라는 복음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시각으로도 참신한 민주적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교황의 선출방식이다.
우리 교회처럼 추기경단에서 교황을 선출하는게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의 의견으로 교황을 뽑게 된다. 즉 모든 신자들이 투표에 참가해서 10명의 교황 후보자를 뽑은 후, 교회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 5,000명을 선정해서 이들에 의해 후보 2명으로 압축되면, 인간으로 할 도리는 다 했으니 하느님께 맡겨야한다는 마음으로 모두 기도 한 후 ,어린이를 시켜 2명 중 한명을 제비뽑아 교황으로 선출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서 보기 어려운 예언적인 것이다.l
인위적인 것이나 정치적인 것이 개입될 수 없는 하느님 백성 전체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읽는다는 극히 민주적이고 복음적인 방식이며, 이런 참신함은 박해의 어려움을 통해 정화된 것이다.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주님을 따르는 원장처럼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한마디로 하느님과 인간이 합일된 방법으로 교황을 선출하고 있다.
신앙의 내용은 동일하나 표현은 다양할 수 있음이 보편성을 강조하는 우리 신앙의 중요 특징이라면 우리와 다른 신앙 배경에서 성장한 콥트 형제들의 삶의 형식과 신앙태도는 우리에게 결핍되기 쉬운 신앙의 핵심과 복음적인 생기를 일깨우는 효과적인 각성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반성과 교훈을 주고 있다.
이집트 광야에서 살았던 초기 수도자들의 삶의 흔적인 “사막 교부들의 영성” 이 신선한 청량제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한계성 때문에, 복음적 봉사의 삶을 너무 강조하는 서방의 수도생활은 어쩔 수 없이 영적 빈곤을 낳게 되었기에, 영적인 감미로움과 풍요를 체험하기 위해 사막교부들의 영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청량제가 될 수 있다.
사막교부들의 금언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누군가가 안토니오 원장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 있고 사랑스러운 것인지를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어디로 가던 항상 하느님을 뵈오며 살도록 하시오. 성서에 씌여져 있는대로 행동하고 어디에 머물던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않도록 하시오. 내가 말한 이 세 가지를 지키며 산다면 그대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성 안토니오 금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