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갈바리아(1457- 1460)
작가 : 안드레야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 1506)
크기: 76X 96cm: 목판 유화
소재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성(聖)미술의 주제 중에서 십자가는 주님 생애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많은 작품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비범한 자질을 인정받아 당시 파도바의 유명한 그림 선생이었던 스콰르죠네 문하에서 12년 동안의 도제생활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화풍을 익힌 후 독립해서 작가 고유의 경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 파도바는 인문주의의 도시로 여러 학자들의 왕래가 많았기에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섭렵함과 동시에 국제 감각을 키우게 되었다. 그는 또한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미술 형식을 철저히 섭렵한 후 이것을 예술의 창조적 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정치 사회적 현실과 연결시키면서 작품의 생동감과 현실감을 더하게 되었다.
그의 대단한 재능과 노력은 성공한 작가로 인정받게 만들어 만토바(Mantova) 공국의 궁정화가로 초대되어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결혼의 방(Camera degli sposi)을 남기면서 르네상스 작가로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작가로서의 순탄한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만토바 궁정화가로서 초청되기 직전의 작품이며, 그의 작가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베로나(Verona)에 있는 유명한 로마네스크 건축인 성제노 대성당(Basilica San Zeno)의 제단화로 그려진 것이다.
모든 일에 신중하고 철저한 성격의 작가는 작품의 성격이 제단화이기에 이 작품을 보는 신자들에게 신앙적 감동을 줄 수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감동적 성경”을 만들려고 했으며, 마태오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수난사화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 아니라 수난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정황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기에 방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수직으로 3등분하면 분명한 구분이 나오게 되며 방대한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십자가 사건의 중심과 핵심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심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중심으로 아래와 역삼각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불안정한 구도이기에 십자가의 비통함을 암시하고 있다. 즉 십자가 사건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구도의 상징인 역삼각형 위에 보이는 하늘은 너무도 청아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상의 구세주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세속성의 무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 비참하고 슬픈 것이기에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어둡고 회색 빛 하늘이 어울릴 것이나 작가는 과감히 이와 정반대의 너무도 평화로운 생각의 푸른색 구도를 통해 주님 십자가의 보혈 은혜를 감지하지 못하는 세상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장면의 연상과 전혀 다른 평범한 일상 삶의 현장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표현을 통해 철저히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소외된 예수님의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많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아래 해골이 놓여있듯 이 십자가 아래도 해골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중세기에 대단한 영향을 주던 주님 십자가 죽음이 가져온 세상의 구원에 관한 신심이다.
7세기에 골고타를 발굴 할 때, 그곳에서 해골 하나를 발견했는데, 민간 신앙에서 이것은 바로 하느님께 불순종했기에 낙원에서 추방당했던 아담의 해골로 여기게 되었으며, 주님께서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낙원을 상실한 아담의 후손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바로 아담의 해골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구원에 대한 대단한 확신으로 정착되었다.
이것은 로마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게 외었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로마서 5, 18- 19)
주님과 죄수들의 얼굴은 죽은 상태를 드러내는 핏기 없는 모습이어서 한층 비감함을 더하고 있다.
루가 복음의 수난사화에는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강도가 달렸는데, 왼편의 강도는 사악한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도 심하자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욕했다는 내용이 있는 반면, 오른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가 당연히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하늘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루카 23, 39- 42)
성서에서 오른쪽은 선한 사람, 왼쪽은 악한 사람의 구도인데, 성서의 이런 내용에 따라 착한 강도의 곁엔 예수님의 수난을 애통해 하는 성모님과 사도 요한 그리고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의 시중을 들던 즉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데오 아들들의 어머니” (마태오 27, 56)를 등장시켜 선과 악의 양면성이 있는 세상의 모습을 극명히 표현하고 있다.
오른편과 달리 왼편의 강도는 세상 악의 상징적 부위이기에 그 주위엔 주님을 못 박기 위해 동원된 로마 병정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 대한 아무런 반감이나 악한 감정이 없으면서도 구세주를 모르기에 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지도 모르고 일상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인간들의 비정함과 미련함을 표현하고 있다.
십자가 아래 말을 타고 있는 병사의 단정한 차림새와 뒷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살찐 말은 십자가의 비통한 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세상 구원과 연관된 십자가 사건이 주위 인간들의 무관심속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인간들의 허망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단정한 복장을 하고 서있는 로마 병사들 아래 세 사람이 땅에 앉아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다. 이것은 수난사화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옷을 벗긴 후, 그 옷을 병정들이 제비뽑기를 했다는 “(루카 19, 23- 24)장면으로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너무도 큰 슬픔 앞에 비정함을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과 오른편에 애통해하고 있는 사도 요한과 부인들의 모습이 대립되며 선과 악의 거대한 축에 의해 형성된 이 세상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왼쪽의 강도 뒤에는 어두운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기에 구원을 상실한 인간들의 암담한 처지를 상징하고 있다.
오른쪽 강도 뒤에는 도시가 있다. 실제적으로 이 도시는 예루살렘이지만 작가는 자기가 활동하며 살았던 도시 즉 파도바와 베로나를 합성시켜 그림으로서 십자가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이 성당에 들어와 기도하는 신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임을 강조함으로서 주님께 대한 회심을 재촉하고 있다.
이 성화를 경배하는 신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처럼 자기 죄를 뉘우쳐 회심해야 하고 예루살렘 부인들처럼 주님 죽음에 대한 깊은 애통을 함으로서 세상 죄인들의 회심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초대를 담고 있다.
작가는 비록 25세의 젊은 나이지만 그동안 익힌 모든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언덕 마을에 적용된 정확한 원근법과 인물들에게 적용된 조각적인 요소를 완벽히 조화시킴으로서 눈으로 보는 성서로서 작품성의 가치를 더하게 되었다.
산 제노 성당
성지 순례 관계로 해답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전화로 연락주시면 해답드리겠습니다, 011-9058- 5691 이요한 신부
이 성화에서 예수님과 좌도 우도의 십자가에서의 처형모습이 다르다는 것도 알수있었습니다. 에수님은 팔을 힘차게 뻗어 고통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반면 우도와 좌도는 손을 뒤로하여 자신들의 행위가 떳떳한지 않은 죄인신분임을 알려주는 듯 하군요. 좋은 성화해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