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를 보물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숨겨진 보물, 숨겨진 하늘나라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숨겨져 있기에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인지는 알겠는데
어찌, 왜 하늘나라는 숨겨져 있다는 것인지 우리가 알아야
우리도 비유 속의 사람처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가 숨겨져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숨기셨기 때문일까요?
제 생각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일부러 숨기지는 않으실 겁니다.
일부러 숨기셨더라도 우리가 발견치 못하게 할 요량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 일부러 숨기셨다면 하늘나라가 참으로 보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고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발견의 기쁨을 더 크게 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어렸을 때 우리의 보물찾기 놀이를 생각해봅시다.
선생님께서 보물을 감추지 않으셨다면 보물이 아니었을 것이고,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어도 보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면이 있긴 해도 하느님께서 부러 숨기지는 않으실 겁니다.
하느님께서 숨기신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숨긴 것일까요?
오늘 복음의 비유를 보면 사람이 숨길 수는 있을 겁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라고 얘기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가 하늘나라를 감출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에 의해 완벽히 숨겨질 수 있는 나라라면 하늘나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하느님이나 누구에 의해 숨겨진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이기에 숨겨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늘나라가 이 세상나라라면 누구나 쉽게 발견할 겁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세상나라가 아니기에 세상나라에 숨겨진 것입니다.
비유에서 보물이 밭에 숨겨졌다고 하는데
밭이란 바로 이 세상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하늘나라를 발견하는 사람은
이 세상 안에 숨겨진 하늘나라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눈을 일컬어 혜안慧眼, 곧 지혜의 눈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이 세상밖에 보이지 않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눈에는 이 세상 안에 숨겨진 하늘나라가 보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인 것 같고,
이 세상 것이 그렇게도 좋게 보이고 그래서 그것밖에 안 보이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고
이 세상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기에
더 이상 이 세상 것들에 대한 탐욕으로 눈이 멀지 않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하늘 은총을 못 보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예쁜 여자에 눈이 멀어 하느님을 몰라보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세상 권력에 취해 하느님 두려운지 모르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의 솔로몬 임금도 젊었을 때는 지혜로웠습니다.
임금이 되고 처음에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고 그래서 지혜로웠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지혜의 시초라고 지혜서는 말하잖습니까?
그런데 차츰 지혜의 눈을 잃게 됩니다.
사람들이 갖다 바치는 재물이 눈을 멀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읊어대는 칭송이 겸손을 잃고 우쭐하게 헸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모르게 했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던 그가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임금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깨닫습니다.
가난과 겸손이 하늘나라를 알아보는 지혜의 눈을 갖게 하고
가난과 겸손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의 사랑을 하게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