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입니다. 상황은 외딴곳, 시간도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 많은 사람들에게 줄 빵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기에, 군중을 돌려보낼 것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사실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계셨고, 설사 알고 계셨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줄 정도로 제자들이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한편으로 대책 없게 행동하시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대책 없는 행동. 여기에 또 다른, 대책 없이 보이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가난. 세상이 이야기하기를,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말합니다. 한 나라의 발전과 상관없이, 어느 나라든지, 가난한 사람은 있습니다. 그리고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변해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부유함의 차이는 더 큽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는, 다시 말해 대책 없이 보이는 것 중의 하나는, 그 가난이 나눔과 연결될 때입니다. 성경의 과부의 헌금 이야기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보다 나눔에 있어서 더 적극적임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가난하다는 것은, 남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삶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것을 충족시켜 줄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우선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그 가난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께 향하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작은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 하는 감사의 기도 또한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가진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함에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상 얻은 것에 대한 감사는, 필요할 때 채워주실 것이라는 희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줌으로 해서, 내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준 것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 속에서도 나눌 수 있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 대책 없이 보여도, 오히려 더 영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필요할 때 채워주실 것이라는 희망이 함께 하지 않는 한, 나눔은 이루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자면, 제자들만 먹기에도 부족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찬미를 드리십니다. 그 찬미 속에는 음식을 주심에 대한 감사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함께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빵을 들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로 빵은 남아돌게 됩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것은 기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감사와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그 기적은 매일, 매 순간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