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
여인의 행복.
어머니의 행복.
우리가 잘 알다시피 루카복음은 다른 어느 복음보다
여성의 인권이랄까 존엄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얘기하고,
주님의 따르던 제자들 중에 여인들이 있었음도 얘기합니다.
오늘 복음도 다른 복음에는 없는 얘기인데
성모 마리아를 부러워하는 여인의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성모 마리아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많은 군중이 있는데도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 중이신 데도
큰 소리로 성모 마리아는 참으로 행복하시다고 외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읽으며 여성의 행복에 대해 저도 생각해봤는데,
여성의 행복은 여인의 행복과 어머니의 행복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여인의 행복은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영어로 말하면 Career woman으로 자기실현을 맘껏 하면서도
한 남자의 사랑을 충분히 받는 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어머니의 행복은 자식을 잘 키운 어미의 행복입니다.
여자라고 다 어머니가 아니고, 결혼했다고 다 어머니가 되는 것 아니지요.
어머니는 오직 자녀로 인해 어머니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어머니의 행복도 자녀로 인한 행복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자기 혼자서 행복하지 않고
자녀가 불행한데도 자기는 혼자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녀로 인해 행복하기도 하고, 자녀로 인해 불행하기도 합니다.
우리말에 현모양처賢母良妻란 말이 있지요.
옛날 자기실현이란 것을 할 수 없었던 시절
여자의 행복은 남편과 자녀에게 달렸는데
남편과 자녀에게 모두 잘하여 남편과 자녀가 모두 잘 됨으로써
여인으로서도 어머니로서도 행복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은 어쩌면 현모도 양처도 아닌 여자인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행복하지 못해 자녀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일수도 있습니다.
남편과 성숙한 사랑을 주고받아야 자녀에게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자녀에게 너무 집착하다 자식 농사까지 망친 여자,
그래서 스스로 자신은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고 하는
여인의 말은 자기 아들과 비교할 때 너무도 훌륭한 예수님을 보고
자기의 불행을 한탄하는 넋두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십니다.
남편으로 인해 행복하려 하지 말고 자녀로 인해 행복하려 하지도 말라고,
하느님으로 인한 행복이 그런 행복보다 더 행복하고 참 행복하다 하십니다.
아들을 잉태한 자궁보다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는 자궁이 더 행복하고,
아들을 젖먹인 가슴보다 하느님 말씀을 사랑하는 가슴이 더 행복하다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시시한 어미가 되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인 당신의 어머니가 되라고 오늘 우리를 초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