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리아 막달레나(1487)
작가 : 카롤로 크리벨리 (Carlo Crivelli :1457- 1493)
크기 템페라 유채: 152X 49cm
소재지 : 네델란드 암스텔담 국립 미술관
작가는 이태리 베네토 출신으로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예술적 감각을 배웠고 스승인 안토니오 비바리니 로부터 투명하고 밝은 화법을 전수받아 당시 유럽 화단에서 절묘한 색체 처리로 진가를 인정받던 베네치아 화풍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마리아 막달래나는 성녀는 복음의 기본인 회개의 삶의 모델이며 주님의 십자가 곁을 지키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장 먼저 나타난 어떤 의미의 크리스챤 삶의 모델이라 볼 수 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 1: 15)는 말씀을 삶의 여정으로 정확히 표현한 성녀이다
루카 복음과 교회 전승에 의하면 성녀는 출충한 미모와 총명함으로 주위의 환심을 사면서 이런 처지에 빠지기 쉬운 방탕한 삶을 살다가 회개해서 주님의 충실한 여제자로서 삶을 살았음을 복음은 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육과 영, 욕망과 영적 가치 사이를 분주하게 반복하는 삶이었기에 성녀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은 표현에 있어서도 극단의 양상, 즉 참회의 처절하고 엄격한 모습과 주님 제자로서의 변화된 모습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당시 대단히 화려하고 색체 구사로 유럽 상류사회에 대단한 인기를 끌던 베네치아 화풍으로 이 작품에 접근했다
성녀가 입고 있는 화려하고 우아한 옷을 전형적인 베네치아 풍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해외무역으로 대단한 부를 축적한 처지였고, 많은 남자들이 업무 차 해외에서 지내는 때가 많은 관계 상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았다.
베네치아 여인들의 교육 정도는 중세기가 그리 높은 펀이 아니었다.
남편의 해외근무로 생활의 여유가 있는 여자들이 몰두하기 가장 좋은 것은 몸치장과 사치였기에 당시 베네치아 여인들의 화려함은 유럽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여성 용품에 관한한 베네치아는 유럽 사교계에 최상품을 공급하던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극히 베네치아 풍에 따라 성녀를 그렸다.
한마디로 성녀의 옷차림은 너무 화사해서 통념적인 성녀 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지이나 오른 손에 들고 있는 향로가 든 옥합이 루카 복음에 18장에 나타나고 있는 성녀의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정교하게 고급스러운 옥합의 모양으로 보아 이것은 아랍 장인이 만든 것이다.
모슬램 사회에서 여자들은 카페트를 남자들은 주물 제작에 대단한 능력을 보이고 있으며 이 전승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처지에 성녀가 든 대단히 세련된 모양의 옥합은 그 안에 담은 향로에 어울리게 고가품임을 암시하고 있다.
성녀에 대한 이미지로서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작가는 회개한 성녀야 말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천상에 태어난 것이기에 영혼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시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몰약과 노회와 계피로 당신의 옷들이 향기로우며 상아궁 현악 소리에 흥겨워 하시나이다
제왕의 따님들이 당신께 마중 나오며 오피르의 금으로 단장한 왕후는 당신 우편에 서 있나이다.
듣거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이라
네 겨레와 아비 집을 잊어 버리라
이에 임금이 네 미모에 사로잡히시리라 " (시편 44: 9- 11)
단정하게 빚은 금발의 머리는 당시 베네치아 여성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다.
베네치아 여성들은 금발의 머리를 선호해서 요즘 같은 염색제가 없기에 일광욕을 통해 머리 색깔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특별한 것은 성녀의 손 동작이다.
성녀는 마치 동양의 무희들의 손동작 같은 유연한 동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 문화와 문물이 유입되었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흔치 않던 것인데, 당시 베네치아에서 명성을 떨치던 선배 작가 안드래아 만택냐에게서 배운 예리함의 표현이다.
주님의 발을 씻겨드리기 위해 옥합을 들고 있는 성녀의 모습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당시 베네치아 여인의 호화로움을 한껏 닮은 성녀의 복장과 달리 머리 부분에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성녀의 영적 기품을 표현하고 있다.
성녀의 성덕의 상징과 같은 머리 부분 후광은 예외적으로 미사 때 사용하는 축성된 성체를 모시는 도금된 성반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성반이 자기위에 예수님을 모시듯 성녀 역시 그리스도를 삶 전체가 주님께 속하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을 모신 성반 모양의 후광 주변에 마가렡, 장미 ,부푼 콩을 장식으로 그렸는데, 이 꽃의 상징은 성녀의 영적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성녀의 삶은 더 없이 호화롭게 보이는 세상 을 포기함으로서 삭막한 삶이 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의 더 천상의 풍요로움을 보이는 삶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이전 장미는 죽음의 상징이었기에 장미는 장례식 때 사용했고 이것이 크리스챤 세대가 되면서 순교의 상징으로 변했다.
크리스챤 시대가 되면서 장미는 동정의 상징이 되어 성모님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되었다.
가시 없는 장미가 동정의 상징이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전승에 의한 것이었다.
원조가 범죄하기 전, 에덴 동산을 아름답게 장식하던 장미에는 가시가 없었는데, 원조의 범죄 후 에덴 동산이 황폐해지면서 장미에 가시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기에 가시없는 장미는 죄에 물듦이 없는 상태인 동정의 상징이 되었다.
작가는 성녀의 전체를 당대 최고의 사치와 호사를 누리던 모습으로 그리면서 이 부분을 통해 성녀의 성덕을 순교와 동정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방탕한 한 시절을 보낸 성녀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에 큰 사랑을 드러낸"(루카 8: 47) 성녀의 영적인 세계를 말하고 있다.
작가는 우아하고 세련된 복장을 통해 성녀의 천상 삶의 품위를 표시하고 머리 부분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열렬히 주님을 사랑한 성녀야 말로 교회에서 최고의 칭송을 받는 순교자와 동정자에 버금가는 존재임을 표시하고 있다.
작가가 활동하던 마르케 지역 카메리노 대성당의 제단화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이 작품앞에서 기도하는 많은 교우들, 특히 부유층의 여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성덕이란 결코 외양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성녀처럼 혼신의 노력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누구나 다 주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이는 성녀가 될 수 있다.
이 제단화 앞에 선 어떤 신자들은 자기들의 취향에도 맞는 멋진 차림의 성녀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챤 인간상의 완성된 모델인 성인이나 성녀가 되는 것은 결코 수녀원이나 수도원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고 세상에 살면서도 성녀처럼 열렬한 주님 사랑으로 살아갈 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이 작품 앞에 선 우리들의 정서도 되어야 할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작가의 인생 이력서와 결심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제작 전 그는 젊음의 혈기를 이기지 못해 어떤 여인과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감옥 체험을 해야 했고 석방과 동시 그의 결심이 이 작품에 여과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달 쯤 되었을 때 본당신부님께서 도움을 주셨는데
영적지도를 받으라고 그러셔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고...장님이 코끼리 만지는격인 셈이지만,
주님께서 도움을 주실거라고 믿지요.
감사히 잘 읽고 옮겨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