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 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한 성 스테파노를 본받아 원수까지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본기도의 내용입니다.
우리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는 “보십시오.”라고 오늘 우리를 초대합니다.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우리도 보라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스테파노의 박해자들처럼 보라는 하늘은 보지 않고
보라고 하는 그만을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우둔한 사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시는데
그러나 스테파노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전혀 조심하지 않고,
원수까지 사랑하며 자기가 보는 하늘을 같이 보자고 초대합니다.
이에 비해 사람들은 화가 머리까지 차올라 스테파노를 죽이려 이를 갑니다.
보라는 하늘은 보지 않고 스테파노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면 하늘이 보이고,
분노로 가득 차면 사람만 보입니다.
사도행전은 스테파노와 사람들의 이러한 차이를 아주 간명하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러니까 내 안에 무엇이 차 있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분노는 나를 채우는 것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내 안에 기도와 헌신의 영이 있지 않고 육의 영이 있게 되면,
순 우리말로 썩어빠진 정신으로 내가 가득 차있으면,
탐욕, 명예욕, 권력욕과 같은 온갖 욕심이 덩달아 차게 되고,
분노, 서운함, 원망, 시기질투와 같은 온갖 악감정이 가득 차게 되지요.
그런데 육의 영, 썩어빠진 정신 때문에 이런 것들로 가득 찰 때
우리의 눈이 향하는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자연적으로 하늘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고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에게로 눈이 향하지 않겠습니까?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수도 공동체들을 반성을 하면
같이, 공동체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나아가야 할 수도자들도
종종 같이 하느님을 보고, 같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에 실패하고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기대하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맙니다.
수도자들인데도 그 영(spirit)이 육의 영, 세속적인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테파노가 같이 보자고 초대한 하늘을 같이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스테파노처럼
“자, 저 하늘을 보십시오.”라고 초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초대할 때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같은 영을 지녀야 합니다.
곧 기도와 헌신의 영과 주님의 영을 지녀야 합니다.
성녀 클라라의 전기를 쓴 첼라노는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얘기를 할 때
같은 영이 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서로를 만나고 싶어 했고
그렇게 만났을 때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따라
같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그림 중의 하나가
바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같이 하늘을 바라보는 그림인데
이 그림처럼 우리 수도 공동체나 가정 공동체도
같이 하늘을 바라보게 되기를 오늘 스테파노 축일에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