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지난 사순 1주 토요일 복음은 마태오복음으로서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으로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입니다.

 

이는 ,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주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기의 말씀들을 마태오와 루카 복음사가가 나름대로 바꾼 것일 겁니다.

 

아무튼 오늘 복음은 하느님을 자비하신 하느님으로 묘사하고,

우리도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은 완전하신 하느님보다 훨씬 친밀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풍성하며 인간미를 풍기게 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고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왠지 완벽주의적인 것처럼 들려서

우리를 숨 막히고, 경직되고, 날카롭고, 까다롭게 만들 것 같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 저의 수도생활 초기 10년은 이 완벽주의 때문에 망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제가 수도생활 시작할 때만 해도

수도자들은 완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가난을 청빈이라고 했는데 저는 청빈의 덕에 집착을 했지요.

프란치스코 하면 가난뱅이라고 했기에 청빈에 더 집착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왜 청빈을 추구하지 않고 집착을 했다고 하느냐 하면

바로 제가 완벽주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완벽주의 때문에 지금하고 비교하면 매우 가난하게 살았지만

프란치스코하고 비교하면 너무도 가난하지 않은 저였기에

그런 저를 용서할 수 없었고,

저만이 아니라 가난하지 않은 형제들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완벽주의에 머물 때 우리는 주님께서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라고 말씀하셔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는 늘 자신과 형제들에 대한 불만, 미움, 분노가 있었고,

급기야는 나 같은 놈은 수도생활을 할 자격이 없다고 절망케 되고,

그래서 결국 수도원을 떠나게 되었지요.

 

수도원을 나가서 방황을 하다가 복음을 통해서 저의 잘못에 대해 깨닫고

하느님과 수도원의 너그러움 덕분에 다시 수도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때 저는 완벽주의적인 완덕은 중요치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니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완벽주의란 사랑이 결코 아니고 그저 욕심이고 집착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완벽주의는 완덕에 나아가게 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포기케 만듭니다.

 

완덕은 사랑에서 가능하고 은총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완덕을 사랑해야 완전에 집착치 않고

자신에 대해서 겸손해야 은총을 받아 완덕을 추구하지요.

 

그러므로 이제 저는 완전하신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사랑이신 하느님, 자비하신 하느님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저도 사랑하고

좋은 의미에서 저에게 너그럽고 자비롭겠습니다.

저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그러하겠습니다.

 

굳이 완전하겠다면 마태오복음이 의도하듯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고 닮으려고 하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8Mar

    사순 제3주일

     오늘 복음에서 제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표징'입니다. 구약에서 예언자들은 표징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은 그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인정 했습니다. 같은 배경에서,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Date2015.03.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1008
    Read More
  2. No Image 07Mar

    사순 2주 토요일-착한 사람 콤플렉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로 시작됩니다. 저는 이 말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들 둘이 있었다는데 두 아들 중에서는 누가 더 주인공일까? 왜 한 아들의 비유를 들지 않으시고 두 아들의 비유를 드셨을까? ...
    Date2015.03.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639
    Read More
  3. No Image 06Mar

    사순 2주 금요일-쓰레가 같은 하느님?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사람들은 버림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니,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버림받기 싫어 내가 먼저 버려버립니다. 나를 버릴 사람을 내...
    Date2015.03.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608
    Read More
  4. No Image 05Mar

    사순 2주 목요일-누가 와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 비유에서 지옥의 부자는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거라고 하는데 제 생...
    Date2015.03.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07
    Read More
  5. No Image 04Mar

    사순 2주 수요일-기대와 각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각오와 기대. 죽을 각오와 성취 기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주님과 제자들의 대비되는 마음가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
    Date2015.03.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92
    Read More
  6. No Image 03Mar

    사순 2주 화요일-회개, 과거로부터 지속되온 고집을 꺾음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을 따라 하지 마라.”   오늘 같은 말씀은 사제인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데  듣기에 거북하지요. 그래서 나에게가 아니고 다른 ...
    Date2015.03.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50
    Read More
  7. No Image 02Mar

    사순 2주 월요일-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자비로운 사람

    지난 사순 1주 토요일 복음은 마태오복음으로서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으로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입니다.   이는 “나, ...
    Date2015.03.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87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933 934 935 936 937 938 939 940 941 942 ... 1365 Next ›
/ 136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