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오늘 말씀은 마르코복음 9장40절과 비교가 됩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추방하는데
그걸 못하게 해야 한다는 요한의 말에 대한 주님의 응답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굳이 편 가르기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편 가르기를 하셨더라도 요한과는 달리 그 폭이 넓습니다.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다 우리 편이라는 식입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의 주님께선 분명한 편 가르기를 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서로 반대되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서로 반대되는 얘기가 전혀 아닙니다.
두 말씀의 경우 모두 악 또는 악령과의 관계에서 하신 말씀이지만
마르코복음 9장의 경우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악령을 쫓아내는데
제자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는 것에 대해
속 좁은 제자들이 시기하고 편 가르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악 또는 악령과의 관계에서는 공동전선을 펼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쩨쩨하게 자기편에 줄서기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일제 때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을 놓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었지만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싸웠던 것과 같이
하느님 나라의 공동의 적에 대해 함께 대적하면 동지로 본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악령이란 하느님 나라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을 거부하는 존재이고
당신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악령을 쫓아냄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있게 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악령과 한 통속이라는 모함을 이렇게 일축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우리의 잘못, 아니 저의 잘못을 깨우치십니다.
우선 저는 하느님 편에 분명히 서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느님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느님 편에 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슬그머니 세상 편에 서기도 합니다.
악령처럼 적대감을 가지고 하느님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세상 편에 섬으로써 결과적으로 반대자가 된다는 뜻이고
속된 말로 왔다리갔다리 한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인간적인 약함 정도로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제 중심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내 편이기를 바라는데
다른 사람 편이 아니라 내 편에 서기를 바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느님 편이 아니라 내 편에 서기를 바랄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누가 저를 비판하거나 반대할 때
그때 제가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제 중심인 것이겠지요.
부지불식간에 이런 제가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러한 저에 저도 깨어있어야겠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함을 느끼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