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오래 전에 고속도로변 교회 현수막의 짧은 문구가 신선한 울림을 줬습니다.
다른 이에게도 그랬는지 이제는 여러 교회에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그런데 기도를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걱정하는 이가 많은 걸 보면 기도할 줄 아는 사람 얼마 되지 않는 거겠지요.
그도 그럴 것이 확고히 믿는 사람의 기도라야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치기 신앙인은 <기도하면서 걱정하면서>, 곧 기도하면서도 걱정하지요.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걱정하지 마라!”
그러므로 오늘은 <걱정하지 않는 믿음>이란 어떤 건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걱정하지 않는 믿음>이란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일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 이렇게 막연하게
원하지 않는 일, 안 좋은 일 없기를 바라며 믿는데
이런 믿음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이런 믿음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라
자기의 운이 좋을 거라고 자기의 운을 믿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기도를 하지 않고 <오늘의 운세>를 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기도를 바칠까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우선 자기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하느님께 의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탁과 의존을 구별해야 합니다.
의존은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남에게 모든 것을 미루는 것이라면
의탁은 자기 힘으로 해야 할 것은 다하고 나머지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의 의탁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약하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인정하기에 하느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약한 힘은 마치 마중물과 같은 거로서
하느님의 힘이 나에게 머물도록 초대하는 힘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이걸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좋으신 분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그렇게 믿는 사람인지는 냉정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다보면 “내게 왜 이런 일이?”라고
하느님께 따지듯 질문을 던지게 될 때가 적어도 한 번은 있지요.
그때 우리는 정말 하느님은 계시는지,
좋으신 분이 왜 내게 이러 시련을 주시는지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 묻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믿음의 고백은
이런 시련을 겪고 난 사람이라야 할 수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의 고백이라야 진실합니다.
그러므로 병고와 시련과 환난 중에도
그것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이기에 주신 거라고 믿고,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주신 거라고는 믿기에
견뎌낼 힘을 주십사고 묵묵히 기도하기만 해도 정말 큰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