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오늘 이 말씀에 저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일까, 아닐까?
전혀 실행하지 않는 사람일까, 조금은 실행하는 사람일까?
그리고 이런 의문도 가져봅니다.
나의 모든 행위 중에 몇 % 이상이 되어야 천국에 들 수 있을까?
적어도 50% 이상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아주 엄밀하게 저의 삶을 반성하면
거의 대부분 저는 제 좋을 대로, 제 뜻대로 하지
하느님의 뜻대로 무엇을 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때에는 하느님의 뜻이 뭣일지 여쭈며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을 하지만
저의 대부분의 행위는 제 좋을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가장 일상적인 행위를 보면, 예를 들어 밥먹는 것을 보면
어떤 반찬을 먹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까 생각하면서 먹지 않고,
그냥 그 순간 제가 먹고 싶은 반찬을 먹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제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제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저의 많은 행위는 하느님의 뜻에 맞습니다.
길을 가다가 노인을 부축하거나 자리를 양보할 때
하느님 뜻을 여쭙지 않고 그 행위를 했어도 그것은 하느님 뜻에 맞지요.
그러니까 종합하여 생각해보면
저는 의식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도 않지만
의식적으로 하느님 뜻을 거스르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거스르는 경우도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행위의 대부분은 무의식중에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고, 그리고
오래 형성된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순간적으로 하는 것이니
나는 나의 무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도 하고 실행치 않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래나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이런 뜻일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까지, 달리 말하면 속속들이 내가 하느님 뜻에 맞는 사람이 아니면
입으로는 주님, 주님 하고, 하느님 뜻대로 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는 행위는 전부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행위일 것이고,
속속들이 하느님 뜻에 맞는 사람이면 아무리 아무 생각 없이 할지라도
그의 하는 행위 모두 하느님의 뜻에 맞는 행위일 것입니다.
속속들이, 그러니까 속의 속까지 내가 하느님의 뜻에 맞으면
다시 말해서 <속의 나>가 하느님 뜻에 맞갖으면
나의 행위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행위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이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깊이 박혀야 하고,
프란치스코의 경우처럼 육신과 본능까지도 영에 순종케 해야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가 <덕들에 바치는 인사>에서 한 말을 깊이 묵상합니다.
“거룩한 순종은 자신의 모든 육신 및 육의 의지를 부끄럽게 하며,
자기 육신의 억제로 영에 순종하고 자신의 형제들에게 순종하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높은 데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만큼
그들이 육신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