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는 말이 귀에 남습니다.
<지금도>란 <오빠가 죽고 난 뒤에도>란 말이지요.
오빠가 죽기 전이나 죽은 뒤에나
주님께 대해서 아는 것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과 관련하여 안 좋은 큰일을 겪고 난 뒤에는
내가 그 사람을 잘못 알고 있었나 하고 자기의 앎에 대해 의심을 하는데
마르타는 자기 오빠가 죽고 난 뒤에도
주님께 대한 자기의 앎에 변화가 없고, 자기 앎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이 자기 앎에 대한 확신.
이것이 사실은 모든 믿음의 기초이고
마르타처럼 주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도 자기의 앎에 대한 자기 믿음,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마르타는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 먼저 얘기합니다.
이것은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자신의 아는 정도를 주님께 겸손하게 아뢰는 것입니다.
주님의 청을 아버지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살아나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을 아는 것만도 대단한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하느님보다 세상 것에 대해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알고,
하느님에 대해서 안다 하더라도 그 앎이 참으로 일천합니다.
능력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안다하더라도
전능하심을 아는 것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느님이 나보다 또는 인간보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고 사실 웬만한 인간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인간과 능력이 비슷한 존재를 신이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을 아는 것은
하느님은 진정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하느님임을 아는 것이며
특히 마르타의 경우처럼 자기 오빠가 죽은 그 슬픈 상황 중에서도
하느님이라면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봐서 아는 것도 아니며 믿어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고백한 마르타에게
당신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게 된다는 것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다는 객관적인 진리를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서
주님께서 그런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격적으로 믿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에 대해 아직 더 얘기할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안다는 것은 주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것을
오빠가 죽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렇게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사랑을 오빠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빠와 자기를 사랑했다면 죽기 전에 오셨을 텐데
사랑치 않았기에 빨리 와달라고 했는데도 미적거리다
죽은 뒤에야 오신 것이라고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오빠가 죽은 뒤에도 주님의 사랑을 여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 거라는 오늘 주님의 말씀이
오빠가 살아 있을 때 주님의 사랑을 참으로 믿은 사람은
오빠가 죽고 난 뒤에도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믿을 것이며,
오빠가 죽고 난 뒤에도 주님의 사랑을 영원히 믿을 것이고,
그런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될 거라는 말씀으로 제게 들립니다.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영원히 믿은 마르타를 기리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