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에 대한 오늘 주님의 말씀을 보면
두 가지 대비되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하는 것>과 <그들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것은 말뿐이고,
행동을 할 경우에는 보이기 위한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말만 하고 자기가 말한 것을 실천치 않는데
말한 것을 실천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보이기 위한 것, 곧 위선 뿐입니다.
제가 딱 이런 사람이고, 그래서 저는 수없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말만 하고 실천치 않으니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짓은 다 위선이니 아예 아무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하나?
실제로 저희 형제들 중에는 이런 생각 때문에
강의 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하고 꺼려하고,
특히 강론은 남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거나
같이 하자고 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 어려워하고 꺼려하지요.
그렇다면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저희 형제들과 달리 뻔뻔스러운 사람이지요.
매일 같이 강론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가서 강의를 많이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찔리지만
그렇다고 제가 완전히 바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제가 운둔소에 들어가지 않는 한
강의나 강론을 안 하는 것이 지금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느님 말씀 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않는 것 같아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어차피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말만큼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만큼 실천치 못하는 것을 제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선자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차피 위선자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말만큼 실천치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실천치 않으면서 실천하는 것처럼 겉꾸밈은 하지 않을 수는 있고,
보이기 위해서 실천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기 위해서 실천치는 말아야 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실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까지 그만 둬야 할까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 마땅하겠지만
이 또한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도성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모범이란 보이기 위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을 내가 살다보면 보이려는 의도 없이 보이는 거지요.
그리고 하느님의 칭찬이 아니라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아니, 칭찬 이상의 사람들의 존경과 영광을 받으려 하지만 않는다면
말하는 대로 실천치 못하는 것쯤은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거라고 믿는데
이것은 저의 큰 착각일까요?
말 그대로 실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제가 한 말(글)이 어떤 때 상대로 부터
"전에 너가 그렇게 말해 놓고 이렇게 행동하느냐?"고
역으로 저에게 화살이 되어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갖고 공개적으로 말(글) 할 때는
"너 전에 그렇게 말했는데 이렇게 하면 안되지.."라는 역풍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가 했던 말을 담보로 발돋움하며 노력하는 제 자신의 안쓰러움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제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는 거지요.
제가 댓글을 쓰는 이유 중 한가지도 그런 제 나름의 나약함에 대한 발돋음이 아닐까.... 싶어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 마땅하겠지만
이 또한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도성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모범이란 보이기 위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을 내가 살다보면 보이려는 의도 없이 보이는 거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