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친구 중에
아주 열심한 개신교 신자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 기억으로
주일에는 절대로 돈 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날 학교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토요일에 꼭 준비해 놓아야지
주일날 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오늘 독서 말씀대로 안식일날 장사하거나 돈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려서는 참으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는데
이제서야 그 친구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주일파공이란 이야기를 많이들 해왔는데
사실 개신교 신자들이 주일파공을 훨씬 더 잘 지킨다.
가톨릭 신자들은 주일날 장사하지 않고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아직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듯하다.
실상 주일날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하지만
안식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주일, 안식일, 휴일의 개념은 꼭 필요한 개념이다.
안식일은 창조를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해 충전을 하는 날이다.
비움이 있어야만 채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채우기에 급급한 우리네 생활에서
한주일에 하루는 그날이 주일이 되든, 월요일이 되든,
어떤 날이 되든 쉼이 필요하다.
내가 주일에 일해야만 하는 사람은
1주일에 다른 하루를 쉬는 날로 삼아라.
그날은 비움의 날이다.
휴식의 날은 그냥 먹고 노는 날이 아니라
비움의 날이다.
세리였던 레위는
늘 채우기게 급급했던 위인이었다.
그 위인이 예수님을 만나
비움의 날을 연다.
그에게 있어 잔치를 베품은 비움이었다.
일상적으로 주일, 휴일, 안식일의 의미는
한주간 동안 내가 집착하고 있던 것에서 떠남이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는 내가 그 때문에 잊어먹고 있었던 일이나
사람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비움이 된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안식일을 적극적인 의미에서 거룩하게 지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날은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리는 날이고,
굶주린 이에게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만복이 굴러들어온다는 것이다.
세리였던 레위처럼 말이다.
설 연휴를 쉬면서
오늘 나의 쉬는 날을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휴일을 보내고 있는가?
나의 쉼은 어떤 의미에서 비움의 날이 되고 있는가?
이 비움은
세리 레위처럼,
주님께로부터 구원 체험, 은혜 체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나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대는 채우기에만 급급한가?
한번 비워보시라.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어 보시라.
주님을 위해서도 베풀어 보시라.
가족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어보시라.
평소에 내가 소홀했던 이들에게 전화라도 드려 보시라.
이 비움의 날을 잘 보내는 이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더욱 잘 참여하여
노동의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쉬는 날, 휴일, 안식일은 나를 위한 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주어진 날임을 잊지 말자.
아주 열심한 개신교 신자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 기억으로
주일에는 절대로 돈 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날 학교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토요일에 꼭 준비해 놓아야지
주일날 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오늘 독서 말씀대로 안식일날 장사하거나 돈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려서는 참으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는데
이제서야 그 친구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주일파공이란 이야기를 많이들 해왔는데
사실 개신교 신자들이 주일파공을 훨씬 더 잘 지킨다.
가톨릭 신자들은 주일날 장사하지 않고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아직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듯하다.
실상 주일날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하지만
안식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주일, 안식일, 휴일의 개념은 꼭 필요한 개념이다.
안식일은 창조를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해 충전을 하는 날이다.
비움이 있어야만 채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채우기에 급급한 우리네 생활에서
한주일에 하루는 그날이 주일이 되든, 월요일이 되든,
어떤 날이 되든 쉼이 필요하다.
내가 주일에 일해야만 하는 사람은
1주일에 다른 하루를 쉬는 날로 삼아라.
그날은 비움의 날이다.
휴식의 날은 그냥 먹고 노는 날이 아니라
비움의 날이다.
세리였던 레위는
늘 채우기게 급급했던 위인이었다.
그 위인이 예수님을 만나
비움의 날을 연다.
그에게 있어 잔치를 베품은 비움이었다.
일상적으로 주일, 휴일, 안식일의 의미는
한주간 동안 내가 집착하고 있던 것에서 떠남이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는 내가 그 때문에 잊어먹고 있었던 일이나
사람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비움이 된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안식일을 적극적인 의미에서 거룩하게 지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날은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리는 날이고,
굶주린 이에게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만복이 굴러들어온다는 것이다.
세리였던 레위처럼 말이다.
설 연휴를 쉬면서
오늘 나의 쉬는 날을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휴일을 보내고 있는가?
나의 쉼은 어떤 의미에서 비움의 날이 되고 있는가?
이 비움은
세리 레위처럼,
주님께로부터 구원 체험, 은혜 체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나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대는 채우기에만 급급한가?
한번 비워보시라.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어 보시라.
주님을 위해서도 베풀어 보시라.
가족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어보시라.
평소에 내가 소홀했던 이들에게 전화라도 드려 보시라.
이 비움의 날을 잘 보내는 이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더욱 잘 참여하여
노동의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쉬는 날, 휴일, 안식일은 나를 위한 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주어진 날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