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소화 데레사 축일의 복음으로는 조금 이상합니다.
이 복음을 오늘 축일 복음으로 선택한 이유가
데레사 성녀가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는 뜻이고,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은 데레사 성녀처럼 이 세상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데레사 성녀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일까요?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을 적극적으로 낮추신 분이셨을까요?
자신을 낮추려는 생각도 없고 그래서 낮추시지도 않은 분,
더 정확히 얘기하면 낮추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왜냐면 한 번도 자신이 높다거나 크다거나 생각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늘 작은 사람,
큰일을 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기가 할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데
사랑도 큰 사랑을 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작은 사랑밖에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하고 비교하면 작은 사랑을 했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자선사업은 정말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소화 데레사는 봉쇄 수녀원에 있었기에 그런 사랑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화 데레사의 사랑이 결코 작다고 하지 않고,
그리고 어쩌면 소화 데레사의 사랑을 우리가 더 사랑합니다.
그러면 소화 데레사의 사랑이 왜 작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큰 것을 지향하는데
자신의 작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 큰 것이고
겸손하게 인정할 뿐 아니라 작음을 사랑하는 것이 큰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소화 데레사의 사랑을 더 사랑합니까?
그것은 마더 데레사의 사랑은 우리가 하기 어려운 사랑이지만
소화 데레사의 사랑은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데레사의 사랑은 예를 들어, 기도할 때 등을 기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일상의 사랑이고, 작은 사랑입니다.
결핵으로 기운이 없어 기도할 때 등을 기대면 좀 편하련만
사랑 때문에 자기의 편함을 희생하고 봉헌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한 번의 큰 사랑도 큰 사랑이지만
작지만 많은 사랑이 큰 사랑이고,
언제나 사랑하는 것이 큰 사랑이며,
늘 사랑하는 것은 더 큰 사랑일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냉온탕을 오가고, 미움과 무관심까지 오가기도 합니다.
우리도 사랑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주 큰 사랑을 욕심냄으로 작은 사랑은 무시합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의 사랑의 위대해보이고 부럽습니다.
저는 갈수록 기도의 취향이나 평가가 달라집니다.
과거 기도삼매경에 오래 머무는 것을 대단하게 여겼는데
요즘은 화살기도를 자주 하는 것을 대한하게 여깁니다.
사랑도 그러하여 요즘은 큰 사랑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작은 것을 사랑으로 하는 것, 이것을 더 크고 소중히 여깁니다.
이렇게 좋게 변해가는 데 있어서 소화 데레사는 좋은 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