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제가 미국에 살 때 좋은 것은 거의 없고 힘든 것뿐이었는데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제 방에 큰 유리창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에는 펼치면 눕듯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는데
휴일이 되면 저는 외출 나가지 않고 그 의자에 눕듯이 앉아
몇 시간이고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하늘 보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저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왜 하늘 보는 것을 좋아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빈 하늘은 제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욕심, 집착, 근심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비우고 허심이 되게 하고
둘째 각박한 현실을 떠나 적당히 감상과 낭만에 젖게 하며
셋째 사소한 것에 매이지 않고 깊은 사색과 성찰을 하게 하고
넷째 이 세상 것들에 머물지 않고 하늘로 초월을 하게 합니다.
그런가하면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저는 외국에 나가도 관광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일만 보고 돌아오고
이번 카자흐스탄 갔을 때도 아무 데도 안 가고 성탄사목만 하고 돌아왔는데
별을 보기 위해서만은 사막을 가고, 밤배로 먼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하지요.
해는 물론 달도 낮에 볼 수 있지만 별은 밤에만 볼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데 별이란 것이 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보이지 않고
칠흑과 같이 어두워야지만 보이는 것이고
그래서 사막으로 가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저도 그렇고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두
어둠 한 가운데 있거나 어둠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을 찾거나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사람은,
그리고 어둠을 모르거나 어둠을 외면하고픈 사람은
별을 보고 싶지도 않고 별을 볼 일도 없겠지요.
그런데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별을 보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이 다 별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별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별 보기를 포기한 사람은 별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 희망은 없다고 희망을 포기한 사람,
다시 말해 절망의 사람에게는 희망의 표지인 별을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별은 희망의 표지입니다.
별은 빛을 발하지만 해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거나
어둠이 아예 없고 어둠을 몰아내는 것도 아닙니다.
어둠 가운데 있지만 해로부터 빛을 받아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별을 보면 별에게 빛을 주는 해를 보게 되고
그렇기에 별은 보이지 않는 해를 보게 하는 표지지요.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집 마련을 포기하고, 인간관계마저 포기한다지요.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어울릴 꿈과 희망, 열정 같은 것보다
무기력, 무감각, 좌절과 같은 것이 더 지배적인 감정입니다.
이것은 새해를 맞이하여 한 신문사에서 젊은이들의 의식을 조사한 것인데
지난 한 달 동안 자주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무기력이 26%, 무감각이 13,5%, 좌절이 13%, 기대감이 13%순이었고,
기쁨(9,5), 자신감(7,4), 활력(4,3)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분노(4,2)할 줄도 모를 정도로 무기력, 무감각, 좌절이 컸습니다.
가끔 젊은이라면 불만도 하고 분노도 하라고 하는데 왜 이리 됐을까요?
희망이나 열정은 못 가지더라도 세상이 왜 이리 어둡냐고
왜 기성세대와 제도에 대해 분노할 줄도 모르게 됐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세상의 어둠이란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나라 잃고 모든 것을 다 수탈을 당해 지금보다 더 어두웠던 때도 있었지요.
그러나 과거에는 공동체가 있어서 서로에게서 힘을 받고,
서로를 위해 힘을 내며, 같이 희망을 찾고 어두움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어두움에 혼자 팽개쳐져 있고 경쟁에만 내몰려
많은 젊은이들이 어두움 가운데서 별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쟁하는 법만 배웠지
별을 같이 보고, 같이 별을 따라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세 박사는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이들은 같이 밤하늘의 별을 연구했으며 같이 별을 따라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두운데 별이 없다고 절망하는데
사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별, 작은 별이 다 있습니다.
다만 있는 별을 없다고 하고,
별은 보지 않고 어두움만 보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별이 없다고 할 때 별이 있다고 알려줄 동료,
같이 보자고 격려할 동료가 필요하고
어둠만 보고 별을 보지 못할 때 별 보는 법을 가르쳐 줄 스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서로가 참 빛이신 당신께로 인도할 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같이 별을 보고, 같이 별의 인도를 받아 빛에로 나아가라고도 촉구하시는데
공현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오늘 이 목소리를 귀여겨들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