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봄이라 해도 꽃샘추위에 바람이 세게 불어 봄기운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겠어요.
뉴스에서는 비닐하우스가 파손되어 금년 농사를 망치게 되었다는 농부의 한숨을 보면서
안타까운데,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농어촌보다 대도시에 많이 산다 해도 대부분인 평범한 서민들 마음의 고향은 시골이 아닐까 해요.
저만해도 농사와 전혀 관련 없이 수도권의 지방 소도시(경기도 동두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고교를 마치기까지 살았고, 그 후로는 주로 대전에서 살고 있으니...
물론, 저의 신혼살림 시작을 충북 청주 복대동 공단지역에서 하였고, 충북 지방공무원으로
밥벌이하느라 보은군에서도 살았으니 대전에서만 계속 살았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얼마 전에 올린 글 “4평 월세에서 45평 내집으로”라는 제목으로 저의 내집마련 수기를 올렸었는데, 저를 아는 분들이 지금은 대전 중구에서 밥벌이 하고 있는 줄 아는 데,
그 후 이야기를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궁금한 것도 많으셔...? ㅎㅎㅎ)
저는 1986년 3월 22일 제 짝지와 청주교구 사직동성당에서 혼인성사로 결혼하였고
청주공단에 있는 업체에서 보통 “공돌이”라 불리는 생산직 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였었죠.
공장에 다니면서 그 다음달(4월)에 치른 충북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인사발령을 기다리면서도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해서 철야근무와 잔업을 마다않고 했었어요.
당시에 제가 받았던 월급이 20만원.
물론, 26년전 20만원을 지금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죠.
보은군청에서 6개월간 수습 받고 마로면사무소로 정식발령 된 때가 1987년 2월이었어요.
주로 대도시에서 살았던 제가 팔자에 없는(?) “면서기”를 시작한 거였죠.
그런데, 1986년 3월22일에 결혼하여 그해 삼복더위에 제 딸 세실리아를 낳았으니,
결혼식 하는 때에는 울 마눌님 뱃속에 혼수장만 미리 해놓았었어요. (ㅋㅋㅋ)
면직원 근무하던 1988년에는 88서울 올림픽 개막(9월)을 바로 앞두고, 제 아들 요한이를 낳았어요.
세실리아는 “86 서울아시안게임”때 낳았고, 요한이는 “88서울올림픽”때 낳은 거죠.
일부로 맞춘 건 아니지만, 국제적인 대행사가 있을 때 만든 1남 1녀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002년 월드컵을 위해 가족계획(정관수술) 않고 버틸 걸... (하하하)
그래서 저희는 저와 짝지 아녜스, 딸 세실리아와, 아들 요한으로 모두 4식구입니다.
그때는 예비군 훈련시는 물론, 수시로 가족계획을 홍보했었습니다.
“지구는 만원이니,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라” 했던 게,
지금은 자식 셋은 두어야 애국자라 합니다... (이런 헐~!)
제가 면직원으로 근무중이던 1988년 3월에는 당시 총무처에서 주관하던 국가직공무원시험을 보았어요.
우리 님들은 “교정직”이라고 아시나요?
어떤 분들은 인쇄 후에 틀린 부분을 고친다는 교정(校正)을 생각하는 데, 제가 말하는 교정은 “교정(矯正)”입니다.
교정직(矯正職)은 전국의 교도소, 구치소 같은 법무부 산하 기관에서 근무하는 직렬의 공무원입니다.
저는 1988년 치룬 국가직(교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경기도 용인에 있는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대전교도소에서 보통 교도관이라 하는 교정공무원으로 1989년 1월부터 근무를 시작했어요.
재소자 교정교화와 구금확보라는 사명감으로 24시간 이상의 계속 근무를 밥 먹듯 하던 중에 1989년 당시에 충청남도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물론, 지금은 대전광역시)로 되는 직할시승격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대전시가 충청남도내의 기초자치단체에서 독립된 광역자치단체가 되는 거였죠.
그래서 대전교도소 보안과 소속 교도관으로 근무하던 중인 1990년에 대전직할시 공무원을 뽑을 때 다시 공채시험에 응시한 겁니다.
다행히 합격하여 1991년 3월에 대전 중구로 발령받았고, 그 후로는 지금까지 중구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저는 지방공무원(충북 보은군 마로면)⇒국가공무원(대전교도소 보안과)⇒지방공무원(대전 중구청)을 거쳐오며, 세 번째로 공무원 근무하는 중입니다.
어떤 분들은 무지 심한 경쟁률에 한번 합격하기도 어려운 공무원 시험을 세 번이나 합격했다니 대단하다는 데...
하긴, 요즘 신규로 들어오는 젊은 직원들 얘기 들어보면, 보통 높은 경쟁률이 아니더라구요. (쩝~!)
저야말로 신혼시절 청주공단의 4평짜리 월세방에서 살면서 생산직 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산전수전 겪었고 지금은 45평 아파트 내 집에서 살면서 일편단심 민들레 마눌님과 두아이와 조금은 편히 살고 있으니...
그래서 저를 아는 직원들은 저에게 “자수성가(自手成家)”의 표본이라고 합니다.
부족한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로 힘든 게 사실이죠.
“소도 엉덩이를 비빌 언덕이 있어야 쉽게 일어 난다”고 했거든요.
저는 젊다는 20대와 30대 시절에 무지 많은 고생을 해왔었기에, 지금 그 년대인 제 아들 딸 같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과 주택난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튼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이 편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를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모레(11일)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입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애쓰실 선량인 국회의원을 제대로 뽑기 위해서도 빠짐없이 투표권 행사를
하셔야죠.
저는 여러 번 투표종사원으로 투표소에서 근무하였었는데, 이번에는 개표소에서 애쓸 겁니다.
선거개표 방송 지켜보시다가 혹시 대전 중구 개표소 모습이 나오걸랑 제 생각을 쫌 해주시길... (하하하)
오늘 아침에 본 충남도청 정문앞 백목련이 활짝 만개했어요.
백목련의 꽃말이 “고귀함”이랍니다.
울 님들이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고귀한 날로 만드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을 맘껏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