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얘기는 사무엘기로 끝나고 이제
솔로몬부터 이후 왕들에 대한 얘기인 열왕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사무엘기와 여러 왕들의 열왕기인 셈인데
다윗이 그만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는 중요한 존재라는 얘기이지요.
이런 다윗이 생을 마치며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합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임금이 대를 이을 임금에게 남기는 그 중요한 유언에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고
그저 하느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얘기를 합니다.
정치적 유산이나 인간적 유산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심지어 형제들 간에 왕권다툼하지 말고 잘 지내라는 말조차도 없이
오직 신앙의 유산만 남기고 떠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하느님께 해야 할 것을 충실히 하기만 하면
다른 것은 하느님께서 다 이뤄주실 것이라고 믿은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는 이렇게 유언을 남깁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성실히 걸으면
네 자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잘 되려면, 성공하려면 “-면”자 조건이 붙습니다.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성실히 걸으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다윗이 얘기하는 성공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채워야 할 조건이 많고 그 조건은 채우기가 힘든 것입니까?
어떻게 보면 채워야 할 조건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 조건이 까다롭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 조건은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모세 법에 기록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의 증언을 지키는” 것,
곧 십계명을 지키는 것, 계명의 길을 가는 것인데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까?
싫은데도 계명이니까 억지로 지키려는 사람에게는
이 길을 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 겁니다.
특히 세상에서 살다보면 하느님의 계명대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계명대로 살려고 해도 계명을 거스를 것을 요구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그러니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즐겁고,
그래야지만 하느님 계명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예 길을 달리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요.
정치가의 길,
교육자의 길,
과학자의 길,
그리고 이런 길과는 거의 완전히 다른 사제와 수도자의 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계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해 길을 달리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또는 교육자의 길을 버리고 사제의 길을 가야만 하나요?
그렇게 길을 아예 달리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윗은 임금이면서도 훌륭한 신앙인의 삶을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탈선을 한 적도 있지만 하느님의 길을 끝까지 간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 장면 총리 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습니다.
장면 총리가 그저 정치가의 길만 갔으면 제가 이사가 될 이유가 없는데
그 기념사업회에서는 신앙인이요 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장면 총리의 삶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기에 저를 이사로 선임한 거지요.
그렇습니다. 그분은 신앙인이요, 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 정치를 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끝까지 가신 분인데 장면 총리나 다윗 왕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느님의 길을 가야 할 사람들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