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들은 야훼의 종을 생각하면
노자 도덕경에서 도에 도달한 도사道士같습니다.
우선 외치지 않고, 목소리 높이지도 않으며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불을 끄지 않음이 그렇습니다.
자기의지를 관철하려 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하늘의 뜻과 다르더라도 하늘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며,
특히 부러진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를 내 판단으로 끝장내지 않습니다.
내가 주도자가 되지도 않고 주장자도 되지 않으려는 것이며
되어 가는 대로 되게 내버려두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허심이 되어야 하고,
당연히 분노나 답답함 같은 감정도 없어야 합니다.
무엇이 또는 누가 순리대로 가지 않아도 지금은 그게 순리이니
지금의 순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순리를 거스르지 않음이지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도
누가 그렇게 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그것이 지금의 그이니
그걸 보고 분노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 답답해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아서 저는 평생 이것,
곧 ‘허심이 되는 것’과 ‘지금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과 씨름하였으며,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이 자신과의 씨름에서 지고 말았고 어제도 그랬습니다.
어제 모 형제회 선거 총회가 있었는데
총회가 끝난 다음 어떤 분이 제게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엄청 피곤하였는데 며칠 누적된 피로도 있었고,
회의 참석하러 갈 때 걸어서 가서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그런 신체적 피로보다도 더 큰 피로는 저 자신과의 내적 씨름 때문이었지요.
답답해하는 저와 답답해하지 말아야지 하는 저 사이의 씨름,
개입하려는 저와 개입치 말고 내버려둬야지 하는 저 사이의 씨름 때문에
보이지 않게 많은 힘을 쏟은 것이며 그래서 피곤해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야훼의 종은 저와 다릅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운다.”
무술이나 운동에서 힘을 빼고 하는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쉽게 승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허심으로 무엇을 하기에 지치지 않으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기가 꺾이지도 않고,
그렇지만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은데 대단한 것을 이룹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힘으로 그리고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우리도 성령을 받아 무어든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오늘 이사야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여기에 아직도 멀고, 한참이나 멀어서 한숨이 나지만
다시 시작하기로 작은 다짐을 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