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
오늘은 안수와 성령의 내리심과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말하자면 왜 안수를 하면 성령께서 내리시는 것인지,
성령강림과 인간의 역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신앙심이 지금보다 훨씬 약하고,
교만은 겸손보다 훨씬 대단했던 옛날의 저는
안수를 Skinship이상으로 그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령강림을 매개하는 영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피부접촉적 애정표현 정도로만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안수를 청하는 사람들을 복이나 달라고 조르는
수준 낮은 신앙인이라고 무시하였고, 당연히 안수해주는 것도 싫어했지요.
실제로 그런 차원에서 안수를 청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안수를 능력의 하나로, 돈벌이 수단의 하나로 지니려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리고 사도행전에도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께서 강림하는 것을 보고
시몬이라는 사람이 자기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어 하는 얘기가 나오고,
이것으로부터 Simonism시모니즘, 곧 ‘성직 매매 죄’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시몬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지는 것을 보고 돈을 가져다 바치면서,
‘저에게도 그런 권능을 주시어 제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8,17-9)
그리고 제게도 기복적으로 안수를 청하는 사람들은 싫어하면서도
제 안수를 통해 병이 낫는다든지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든지 하는,
일종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 없지도 않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안수를 신앙적으로만 보고 그저 사랑으로 해줍니다.
곧 이제는 안수가 욕심으로 소유할 수 있는 기적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이며 성령을 매개하는 성령의 은사로
저는 생각하고 오직 사랑으로만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그런 은사를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안수를 통해
다른 사람도 성령을 받게 하는 그런 은사의 소유자가 있음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런 은사의 소유자가 되는 겁니까?
가장 단순하게 얘기하면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그런 은사도 소유하는 건데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느냐는 질문을 또 다시 하게 되겠지요.
성령을 믿되 욕심 부리지 않고,
성령을 청하되 갈망으로 청하며,
성령을 소유하되 사랑으로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우선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성령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지지 않음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성령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성령의 존재를 믿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는 것, 특히 자신에게도 역사하심을 믿는 겁니다.
다음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자신에게도 역사하심을 믿는다면
성령께서 나에게도 역사하시기를 청하고, 역사하시도록 허용하는 겁니다.
이는 마치 최면의 세계를 믿으면 최면을 거부하지 않고
최면술사가 자신을 최면 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성령의 역사를 청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고,
허용치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청하고 허용할 거라는 얘기지요.
헌데 성령의 역사를 청하고 허용한다는 것은 안방을 다 내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없어지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완전히 활개 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더 자세히 보겠지만 성령께서 나를 험지로 인도하셔도
거부치 않고 그리로 끌고 가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시고,
그곳으로 성령께서 나를 끌고 가시는데도
그래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갈망하고 허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