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베드로서의 말씀에서 저는 네 단어에 주목을 하였습니다.
<욕망>, <갈망>, <희망>, <정신>입니다.
이 네 단에 주목하여 오늘 베드로서를 읽으니
정신을 차리면 하느님을 갈망하고 은총에 희망을 걸고 살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욕망을 따라 살 거라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바란다는 뜻의 망望 자가 들어가는 비슷한 뜻의 단어들을 보니
희망希望, 갈망渴望, 욕망慾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라는 것들이 있는데 그 바라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제 생각에 무엇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고,
어쩌면 인간만의 조건입니다.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결핍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가지지 못한 것, 자기에게 없는 것을 바라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바라지는 않잖아요?
그러므로 부족한 것 없이 충만이신 하느님은 바라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물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있지만
당신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결핍 때문에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부족한 우리가 잘 살고 잘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잘 살면 더 바라실 것이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도 바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피조물도 우리 인간처럼 부족한 것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구하기는 해도 바라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동물들에겐 욕구는 있어도 욕망은 없을 거라는 얘기이고,
몸의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는 있어도
감성적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은 없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욕망을 품고 있는 개나 욕심을 부리는 개가 있을까요?
그런데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달리 욕구 이상의 것을 갖고자
욕망하고 갈망하고 희망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다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인간만이 무한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무한히 바라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한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이 알고 바라게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이 세상 것을 무한히 욕망하라는 뜻이 아니라
무한하신 하느님을 갈망하고 천상 것을 희망하라는 뜻이었지만
어떤 사람은 하느님이나 천상 것을 갈망하고 희망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데만 급급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베드로서는 무지하던 때의 욕망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우리 인간이 맛보고 깨달아야 하는데
하느님과 천상 은총을 모르기에 세상 것을 욕망한다는 것이고,
그 무지도 인간의 약함과 한계 때문에 모르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모르는 것이라는 얘기이고, 죄의 무지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무슨 죄입니까?
정신을 차리지 않는 죄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올바른 정신은 차리지 않고,
썩어빠진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죄입니다.
올바른 정신(spirit)은 성령(Holy Spirit)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 성령을 받으려하지 않기에 썩어빠진 정신과 욕망으로 가득 찬 죄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서는
“그 일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해 선포”되었고
그것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얘기한 다음 이렇게 덧붙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희망을 거십시오.”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했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욕망과 사랑의 갈망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