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오늘 열왕기 아합 왕의 말이 눈에 콕 들어옵니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라는 말말입니다.
엘리아 예언자가 그에게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예언자라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인데
아합 왕에게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아니라 원수이고,
다른 누구의 원수가 아니라 바로 나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원수가 아닌데 왜 나에게는 원수가 되고,
왜 나는 그를 나의 원수로 만든 것입니까?
또 다르게 얘기하면 뭐 소유할 것이 없어서
원수를 나의 것으로 소유하였습니까?
우리는 돈을 좋아해서 내 돈, 내 돈 하는데
돈도 소유치 않고 원수를 내 원수로 소유하였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오, 내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원수’ 대신 ‘내 사랑’ 하는 사람은 얼마나 좋고,
원수 대신 사랑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 내 사랑!’ 할 수 없을 거면 ‘이 내 원수’ 대신
‘오, 내 돈!’이라고 함이 숫제 낫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굳이 원수를 내 것으로 소유합니다.
그런데 원수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을 터이니
싫은데도 소유하는 것이 원수일 터입니다.
그러면 왜 싫어하는데도 거절치 못하고 소유할까요?
말장난 같지만 거절하지 못하기에 소유하는 것이고,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싫어하기 때문이며,
싫어하는 이유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 말씀에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악인 선인이 따로 없고, 의로운 이와 불의한 이가 없을 겁니다.
오늘 아합 임금에게서 볼 수 있듯이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만 원수가 있는 것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만 원수가 있는 것이며,
전에 말씀드렸듯이 불행한 사람에게만 원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오늘 주님 말씀 따라 큰 결심을 하는 겁니다.
욕심 대신 사랑을 가지고,
욕망 대신 열망을 지니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