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그 자체로는 명쾌하고 그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열매가 뭔지를 생각하면 그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들이라면 쉽게 자식농사를 떠올리며
자식을 자신들의 열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들이라면 제자들을 열매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저희 수도자들에게 열매는 무엇일까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저희 선배 수사님의 말씀이 가끔 생각나는데
목장지패木長之敗, 인장지덕人長之德라는 말씀입니다.
큰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나무는 손해를 보지만
큰 사람 밑에 있는 사람은 덕을 본다는 뜻이지요.
남에게 덕을 보게 하는 사람,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덕을 보게 하는 사람은
많은 열매, 좋은 열매, 많고도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수도자라면 영적으로 많고도 좋은 열매를 맺을 겁니다.
그런데 남에게 덕을 보게 하려면
보게 할 덕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저를 보면 살아오면서 덕을 쌓은 게 아니라 변덕만 쌓았고,
덕을 쌓은 것 같다가도 어느 때 보면 와르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이런 저를 보면 프란치스코의 전기 작가 토마스 첼라노의 말이
너무도 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겸손의 덕이 밑바탕 되지 않으면 덕을 쌓아올리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허물어지는 것이 완덕이라는 건물이라고 그는 말하지요.
저를 잘 아는 분 모두가 다 잘 아시듯 저는 아주 교만하고,
저의 교만은 아주 오래 되고 숙성된 교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깨려고 그리 애를 썼건만 못 깬 교만이기에
저는 오늘 또 교만을 보고 철천지원수처럼 이를 갑니다.
이런 저이니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교만이 치솟을 때나 꿈꾸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더 늙었을 때를 생각하면
좋은 열매는커녕 나쁜 열매나 맺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합니다.
얼마 전 모 수녀원 원장들 모임에 가서도 한 얘기지만
다른 욕심 부리지 말고 그저 원장 자신부터 행복하시라고.
원장이 행복하면 공동체 자매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공동체 자매들을 힘들게 하거나 불행케 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므로 좋은 열매는 맺지 못해도 나쁜 열매는 맺지 않는 저이기를,
남을 행복하게는 못할지라도 저라도 행복한 삶을 사는 저이기를 바랍니다.
좋은 열매는 맺지 못해도 적어도 나쁜 열매는 맺지 말자!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