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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와 자비


  평소에 제가 늘 하는 말 중에, "중국 유명지들은 별 관심없어도 언젠가 백두산엔 꼭 한 번 가 볼 겁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북한을 통해서 가야는데 저렇듯 남과 북 똑같이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니, 조속한 평화 통일은 언감생심!  그래서 안식년을 기해 중국을 통해서라도 가기로 결단을 내렸지요.  4박 5일의 패키지 여행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대만족이었습니다. 


  백두산엘 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기후변화가 제일 큰 관건- 다행히 제가 가는 날, 뻐스에서 내려 <서파>쪽으로 30-40여분 오르는  초입에 빗방울이 떨어졌고 올려다 보는 정상엔 시꺼먼 구름이 잔뜩 끼어, 천지를 제대로 보기는 틀렸구나 여겼지만 정상에 올라보니 이게 웬 천우신조!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이 흘러가는 기가막힌 천지의 위용이 펼쳐진 겁니다.  늘 사진으로만 대하던 그 장관을 직접 대하다니 정말 감동 그 자체!  마치 호수면이 마법에라도 걸린 듯 파아란 에라멜드 색조와 평온한 적막으로 휩쌓여 있었죠.  그리고 깊고 깊은 물 속에서 뭔가 강렬한 생명체가 금방이라도 솟아 오를 것만 같은...아,아!  스코트랜드의 네스호에서 회자되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을 살리려는 선녀나 신선같은 영험한 존재 말입니다. 

  이틀째 <북파> 쪽으로 올라갔을 때도 날씨는 더욱 쾌청했고 기온마져 온화했습니다.  정작 찍어야 할 사진은 인파로 인해 제대로 잡기 어려운 시야였습니다.  겨우 몇 컷을 누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답니다.       


  그곳에 온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중국인들이었고 한국인들도 적지않게 섞여 있었습니다.

  '백두산'하면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 아닙니까?  이 땅의 크고 작은 숱한 산들이 백두대간에서 파생하여 한반도에 두루두루 퍼져있으니, 그렇듯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움이 가득한 천지가 있고 산에서 끝없이 뻗어나간 갈래갈래의 아름다운 그 자연풍광을 뉜들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뻐스로 그곳을 향해 오르는 몇 시간의 길이 평지로만 느꼈지만, 막상 올라보니 평지가 아닌 멀고 먼 고원을 오르는 오르막 길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끝없이 그 넒은 고원을 채우고 있는 자작 나무 원시림 군락지며 잘 보전된 건강한 생태계를 보니, 중국이라는 나라의 무궁무진한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좀 부럽기도 하였고, 반대로 동족인 북한은 백두산의 60%나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동안 뭘 하고 지냈나 한숨이 절로 났습니다.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민족의 영산이요 기억의 표상이 백두산이건만, 그런 것들을 함께 해 오지 못하는 아픔! 

  광개토대왕이 만주 땅을 휩쓸며 호령하던 고구려사마져도 중국사인양 호도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여긴엔 우리가 중요시하는 단군조선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최초의 우리 국가인 고조선을 기자조선으로 바꾸어 쓰면서 중국사의 일부로만 해석한 계획적인 진로 앞에, 강력한 국력이라야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 계승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 봅니다. 

  중국은 이미 1960년에 백두산을 <자연보호구>로 지정, 1986년에는 <국가급 삼림과 야생동물유형 자연보호구>로 승격시켜 놓았지요.  그네들이 백두산과 그 둘레의 풍부한 자원과 생태적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는 동안, 두 동강난 우리는 아직도 이념 싸움으로 서로를 쇄진시키고만 있는 안타까움!    


  그렇습니다.  제가 백두산에 가기를 그토록 염원했던 것은, 우리나라 제 1봉이 과연 어떤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직접 그곳에서 남북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미약한 기도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해오던 황량한 <만주벌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17배나 되는 광활한 땅이요 우리 핏줄인 조선족 90만이 살아가는 연길자치지구- 그러나 역사는 흘러 관광정책상 한핏줄이라 하겠지만 이미 중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자 무궁한 역사 기억의 표상인 백두산!

  그냥 관광인으로 구경만 다녀올 게 아니라, 순례자의 자세로 백두산을 통해 우리의 실정과 지견을 바로 지니고 가르쳐야  할 동방 원리의 텃밭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순례자가 지녀야 할 긍극적인 마음과 자세는 하느님을 향한 애정, 동경, 경앙(景仰)이 아니겠습니까.  백두산 앞에 우리가 지녀야 할 그런 몫이기도 하구요.

  비록 짧은 여정이었지만, 성산 백두산을 향한 일생일대의 여행자, 제가 시대와 계산에서 멀어져 성스러움을 대하는 저희 민족에게 소리없이 고(告)하건데, 요람에서부터 저를 깨워 함몰되어 가는 정적 속 침묵의 함성을 왜치는 것. 

  백두산이여, 늘 너와 하느님의 신령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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