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개와 상관없는 기적
회개를 가져오는 기적
오늘 주님께서는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켰지만 회개하지 않은 고을들,
곧 코라진과 카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이것을 보고 생각게 됩니다.
기적을 아무리 많이 일으켜도 회개에는 아무 소용이 없구나!
그러므로 기적 중의 기적은 다른 기적이 아니라 회개의 기적이구나!
그런데 기적은 정말 회개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까?
매일 떠오르는 해가 회개를 하게도 하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도 회개를 하게 하는데
어찌 기적이 회개를 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해가 어떤 사람에게는 회개케 하고 어떤 사람에겐 아무 소용없다면
회개의 문재는 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이듯
기적이 회개로 이어지느냐 마느냐는 결국 사람의 문제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적이, 기적이 아닌 사람에게는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 거지요.
그러면 기적이 어떤 사람에게 기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이 아니며,
어떤 사람에게는 회개로 이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는 겁니까?
기적이란 그저 이적로서의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표징이어야 하는데
욕심의 사람에게는 기적이 하느님의 표징이 아니라
그저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욕심은 블랙홀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것도 블랙홀 앞에서는 다 빨려 들어가듯이
욕심도 모든 것을 다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하느님의 업적인 기적마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 반대의 것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교만입니다.
욕심이 모든 것을 다 자기 것으로 소유한다면
교만은 반대로 모든 것을 다 차 버립니다.
교만한 사람은 모든 것을 무시하고 교만할수록 더 무시하잖습니까?
그런데 무시無視라는 말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니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느님도 없다고 보고
하느님의 업적인 기적도 그에게는 없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대표 죄>는 욕심과 교만입니다.
욕심과 교만 앞에서는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도 없고, 기적도 없고, 그래서 회개도 없습니다.
물론 사랑도 욕심과 교만의 사람에게는 없지요.
반대로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모든 것이 그에게는 하느님의 업적이고 표징이지요.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늘 찬미하고,
하느님의 업적들인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구요.
저는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지 성찰합니다.
“불행하여라, 너 김 찬선 레오나르도야.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