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가라지 밭일까, 밀밭일까?
오늘은 주님의 가라지 비유를 제 비유로 각색을 해보겠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를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마음이다.”로.
실로 우리의 마음은 사람의 아들이 뿌리는 좋은 씨의 밀밭일 수도 있고,
악마가 뿌리는 나쁜 씨의 가라지 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씨건 우리가 받아들이는 거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좋은 씨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나쁜 씨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얘기며
좋은 씨를 받아들이건 나쁜 씨를 받아들이건
그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말들 중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인간의 말을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인간의 말 안에도 좋은 말이 많이 있을 수 있는데
인간의 말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이나 선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말이나
하느님의 사랑과 선에 정반대되는 아주 나쁜 말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서핑을 하거나 뉴스를 봐도 강론은 차치하더라도
건전하고 아름다운 얘기를 소개하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보지 않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만 골라볼 수도 있지요.
제가 가톨릭 언론인이나 방송인들의 피정을 몇 차례 지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뉴스만 내보내지 말고
미담도 많이 소개해달라고 하니 그러면 안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 마음 밭은 온통 가라지 밭이 되고 쓰레기장이 되고 마는데
우리 안에서 이런 말만 쫓게 하는 것이 바로 세속적인 정신이고,
다른 말로 하면 육의 영(Flesh of the Lord)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그 따위 썩어빠진 정신을 가지고 뭣을 하겠느냐?’고 하는데
이 <썩어빠진> 정신이라는 것이 바로 세속적인 정신, 곧 육의 영이며
이런 정신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안 좋은 생각만 하고,
안 좋은 얘기만 쫓으며, 쾌락에 빠져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가 말하듯이
우리가 육의 영 대신에 기도와 헌신의 영을 지닐 때
더 정확히 말을 옮기면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을 때>
이 <기도와 헌신의 영>이 주님의 영을 영접하여
주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씨 뿌리게 할 것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행동으로 옮기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프란치스칸 언어로 말하면 기도와 헌신의 영을 차려서
기도의 영이 늘 주님과 통교하고 일치를 이루는 기도를 하게하고,
헌신의 영이 늘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헌신적으로 하게해야 합니다.
어제 행진을 끝내고 야고보 축일을 맞이한 형제가 둘이나 있어서
저희는 같이 한 잔을 나누며 신앙적인 얘기를 풍성하게 나누었고,
이때 저희는 신심행위의 좋은 점과 위험에 대해서도 얘기 나눴는데
신심적인 사람은 어떤 한 신심에 치우쳐서 다른 신심은 배제하거나
심지어 우리 신앙의 기본과 근본을 소홀히 하는 위험도 있지만
좋은 쪽으로만 보면 좋은 신심에 자기 온 정신을 쏟고,
온 마음을 기울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일에 헌신을 합니다.
<신심적>이라는 말의 다른 말이 <헌신적>이고
<헌신적>이라는 말의 신앙적인 표현이 <신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의 마음 밭이 어떤 밭인지 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