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 이 말씀을 놓고 보면 하느님께서 부부를 짝으로 맺어주신 것은
둘이 아니라 한 몸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부부는 정말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거야?
왜 둘이 한 몸으로 살아야 되는 건데?
부부만 하느님께서 맺어주시고 부부만 한 몸으로 살아야 되는 거야?
부부가 자신들은 정말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쩍이라고 생각하거나
서로 좋아서 짝을 이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결혼도 성소요,
짝도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거고 맺어주신 뜻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은 서로 좋아서 만난 것이고
좋아서 만난 것이기에 싫어서 헤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에게 하느님께서 짝을 맺어주신 뜻은 무엇입니까?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짝을 맺어주셨다고 하는데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결혼 안 한 사람은 그야말로 홀로 살아가도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이 되거나 하느님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삼위의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이신 분, 곧 삼위일체십니다.
이것은 수학적으로나 화학적으로 셋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사랑으로 셋이면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것이 이런 뜻이기에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혼자 살아도 혼자로서 하나가 아니라 같이 하나를 이루어야 하고,
사막이나 산골에 혼자 살아도 홀로가 아니라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사실 사랑이 없으면 결혼을 했어도 둘이 하나인 삶이 아니라
둘이 같이 사는 것일 뿐 혼자로 하나인 삶을 살기에
한 집에는 살아도 한 몸으로는 살지는 않지요.
저는 자주 성무일도의 신학을 얘기합니다.
저희 수도원에서도 보면 같이 한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가끔 그런 것이 아니라 늘 혼자 구석에서 기도하려는 형제들이 있고,
거칠게 표현하면 구석에 처박혀서 혼자 기도하려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같이 하느님께 나아가 같이 하나가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려는 마음이 없고
혼자 있고 싶고, 다른 사람을 배제한 채 혼자만 하느님과 만나려는 겁니다.
그러나 성무일도 신학은 그 반대입니다.
다른 기도가 아무리 수없이 많아도
수도회별로 그리고 신심단체별로 아무리 고유한 기도가 있어도
교회 공통인 성무일도를 바침으로써 혼자가 아니라 같이 기도를 바치며
교회 전체가 공동체로서 하느님께 나아가고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혼자 성무일도를 하더라도 교회 공동체와 같이 기도하고,
한국에서 성무일도를 하더라도 아프리카의 누구와 같이 한다는 정신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고 성무일도의 신학은 우리를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사람은
혼자 살아도 온 세상 사람과 하나인 삶을 살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결혼하여 같이 살아도 따로따로의 삶을 삽니다.
같이 하나인 삶을 살 거냐?
따로 홀로인 삶을 살 거냐?
하나 되어 살 거냐?
홀로 되어 살 거냐?
한 마리로 얘기해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 거냐? 말 거냐?
이것을 깊이 묵상하고 성찰케 하는 오늘 주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