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애만큼 성경을 읽었고
8년을 매일같이 말씀 나누기를 인터넷에서 하고 있는데도
성경 읽는 것이 늘 달콤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적도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제가 찔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의 사랑하라는 말씀이 저를 찌릅니다.
사랑하라고 하셨을 뿐인데 제가 찔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말씀이 저를 찌르지 않는데도 왜 제가 찔릴까요?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제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살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너에게만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
내게도 그 말씀을 적용시키고 성찰을 하는 한 찔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정확하게 저를 찌르십니다.
다른 말씀은 찌르지 않으셔도 제가 찔리는 것인데 반해
오늘 말씀은 정확하게 저 같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여러분도 제가 하는 말씀 나누기는 잘 받아들이시되
제가 하는 짓은 하나도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도 따라 하지 말라는 말이 너무 하다 싶으면
겉은 따라서 하되 속은 따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저는 위선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위선자가 아닌 경우는 제가 위선자라는 고백을 할 때뿐입니다.
실로 저는 위선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위선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위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존재는 악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은 선이기 때문이고,
또 그렇기에 악한데도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위선자라는 것이 사실이지만
너무 부정적이고 자학 일변도의 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저의 위선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제 위선에 거짓으로 선을 행하는 측면도 있지만
선을 무척 사랑하여 선행을 흉내 내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위선을 하는 것은
보이기 위한 것이니 주체성을 잃은 것이고
그래서 그런 위선은 불쌍하고 초라한 것이지만
선행을 흉내 내는 측면에서 위선을 하는 것은
그래도 좋게 보아줄 만한 차원이 있는 거지요,
한 때 성 프란치스코 옆에 단순한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를 닮기 위해
옛날 우리가 따라 하기 장난을 하듯 프란치스코의 모든 행위를 따라 했지요.
프란치스코가 기도하며 한 숨을 쉬면 그도 한숨을 쉬고,
프란치스코가 눈물을 흘리면 그도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프란치스코가 침을 뱉으면 그도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그가 죽었는데 프란치스코는
그를 칭찬하며 성 요한이라고 불렀지요.
저도 단순한 요한처럼 보이기 위한 위선자가 아니라
흉내 내는 위선자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 아침 생각합니다.